의원 개인 홈피 등 어디에도 없고... 매니페스토본부 이행 점검도 안 받아 공약 공개 안해도 안지켜도 ‘그만’... 전문가 “의정 평가 방법, 공개 선행을”
의원님 뭐하세요? 광역의원 공약 추적기
행방불명된 ‘공약(公約)’, 도민 알권리 ‘깜깜’
의원(議員)은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의결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개개인이 직접선거를 통해 공약을 내걸고 선출돼 각각의 입법기관이자 국민·지역민의 대변인이 된다. 하지만 기관이나 민간 차원에서 국회의원의 공약은 꼼꼼히 점검해도, 지방의원의 공약까진 점검하지 않는다.
경기일보는 내년 6월3일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유권자의 날(5월10일)을 맞아 지방의원의 공약에 대해 조명한다. 특히 내달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출마하는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도 제시되는 상황이라 국민을 향한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보고자 한다.
1천400만명의 전국 최대 인구를 아우르는 제11대 경기도의회 의원 156명은 어떤 공약을 냈을까. 1년여 임기가 남은 상황에서 얼마나 지켜졌을까. 광역의원의 공약을 점검하는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에서 경기α팀이 이들의 공약을 추적했다. 편집자주
베일에 싸인 광역의원들의 공약, 유권자의 알권리가 막혔다.
7일 경기α팀이 전국 17개 시·도 광역의회 홈페이지를 분석한 결과, 경기도의회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2곳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의회는 그 어디에서도 광역의원들의 ‘공약’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경기도의회와 제주도의회만이 의원 개개인을 소개하는 페이지 안에 ‘공약사항’란을 뒀다. 유권자들이 공약사항란에 접속하면 의원들의 소속, 연락처, 이메일, 공약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인천광역시의회는 10여년 전 전국 광역의회 중 유일하게 홈페이지 내 공약을 공개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부산광역시의회, 충청남도의회,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등은 ‘의원에게 바란다’란은 있지만 공약과는 무관하고, 전라남도의회, 경상남도의회 등은 정책담당관실·의정담당관실에서 공약사항을 관리한다지만 ‘의장’에만 해당된다.
현재 대통령, 국회의원, 광역·기초자치단체장 등은 모두 홈페이지에 자신의 공약을 공개하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공약을 살필 수 있는 곳이 장(長)이 소속된 곳의 홈페이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약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등으로부터 정기적인 이행 점검을 받는다.
여기서 ‘광역의원’은 논외다. 어디에서도 이들의 공약을 살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공약을 공개하지 않아도,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다.
유권자 입장에선 광역의원들의 공약을 찾기부터 어렵다.
유권자들이 광역의원의 공약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에 등록된 ‘후보자 선전물’을 보는 것이다. 정당 및 후보자의 벽보와 공보를 일일이 검색해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상 이 방법이 유일하다.
이 외 블로그·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플랫폼에 의원이 직접 게재한다면 공약을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SNS 등에 직접 공약을 게시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문가들은 공약 이행의 출발이, 공약을 유권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으로 ‘공개’하는 것부터라고 지적한다.
최준규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주민들이 지방의회 의원들의 공약사항과 의정활동을 쉽고 투명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 이들에 대한 평가도 할 수 있고 지방자치도 원활히 작동할 수 있다”며 “단순 조례발의 및 자료요청 건수 등 정량적 지표가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의원들의 공약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한 규정 없어… 의원들 손에 달린 ‘공약 공개’
경기도에는 전국 최다 인구, 전국 최다 시·군이 있다. 이 속에서 경기도의회는 ▲의결기관으로서의 도정 방향 제시 및 의사 결정 ▲자치 입법기관으로서 정책 입안 등 수행 ▲건의 및 결의 등을 통해 국가 등에 적극적 의견 표명 ▲집행기관의 행정·재정 운영 상황 감시 및 평가 ▲도민 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 수행 등 책임을 맡는다.
지방자치단체의 ‘집행’과 지방의회의 ‘입법’ 사이 존재하는 이들이 바로 광역의원이다. 제11대 경기도의회에는 총 156명이 있으며, 올해만 38조7천억원이 넘는 경기도 예산을 심의·의결한다. 이 역시 전국 최다 인원, 최고 규모다.
지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최근 4·2 재보궐선거까지 저마다의 공약을 약속하고 표심을 잡았지만 지역 가까이서 그 공약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 어느 기관·단체에서도 광역의원의 공약 이행여부를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 점검마저 어렵다.
■ “의원 공약을 왜 의회에 문의? 직접 물어보세요”
2년 전, 세종특별자치시의회 홈페이지에 민원 글이 올라왔다. 모 의원의 공약을 문의하며 공약 이행을 위한 세부 계획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의회 측은 “지방의원의 공약사항 이행과 관련해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추진 결과를 홍보하는 건 내용이나 양태에 따라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 “개인의 공약상황을 의회에서 별도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남겼다. 비단 세종만의 얘기가 아니다.
경기α팀이 전국 광역의회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17개 시·도 광역의회 중 경기도의회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등 2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어디에서도 광역의원들의 ‘공약’을 공개하고 있지 않았다.
제주의회의 경우 ‘공약사항’란에 접속하면 의원별 상세하게 지역구별 공약이 명시돼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현역의원 검색을 위한 페이지를 들어가기만 해도 상당수 의원이 자신의 공약을 영상화 해서 ‘제2공항의 조속한 추진’, ‘돌봄지원조례 제정’ 등을 소개하며 “열심히 일하겠다”, “지역 부흥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관계자는 “2020년 이전부터 개별의원들이 공약사항을 입력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고, 사무처가 따로 관리하지는 않아 명확한 배경은 파악이 안 된다”며 “의원 입장에선 공약 알리는 게 홍보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판단 하에, 사무처 내에선 지역주민들이 도의원 의정활동이나 공약사항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 외 나머지 지역 대다수는 의원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 SNS로 연결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채널 안에서도 ‘공약’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여타 광역의회 사무처 관계자들은 “의원들의 의사에 따라 누구는 공개하고 누구는 비공개할 경우 특정 의원 사이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고, 이행 여부까지 공개할 시 그 자체가 선거운동처럼 비춰질 수 있다(인천)”, “시의회는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무처에서 따로 공약사항을 관리하지 않으므로 의원 개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광주)”, “공약 공개에 대한 특별한 규칙이 없어 홈페이지에는 없지만 시민 요청이 있을 시 내부 검토를 해보겠다(대구)” 등의 반응을 보였다.
■ 경기도의회, 공약 볼 수는 있지만 ‘개선 필요’
경기도의회는 그나마 공약을 볼 수 있게끔은 했다. 다만 개선은 필요하다. 비례대표 15명을 제외한 의원 141명 중 22명(15.6%)이 ‘공약사항’란을 공란으로 비워두고 있어서다. 의회 홈페이지 안에서 의원 개인 페이지를 들어가 공약란을 클릭해도 새하얀 빈 칸만 보인다.
나머지 119명(84.4%) 또한 과거 선거 당시의 포스터나 공보물을 그대로 실어놨다. 크기에 따라 글씨나 사진 등이 잘려 명확히 확인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경기도의회는 공약 공개를 의원에게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어서 그들의 선택에 따라 ‘선거포스터 공개’나 ‘미공개’를 택한 셈이다. 제주의회, 제주의원들처럼 세심히 정리한 사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앞서 지난 2010년 제8대 도의회가 출범할 당시 도의회 내에는 ‘경기도의회 매니페스토연구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당시 의원들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연구회 또한 사라졌다.
이어 2018년, 제10대 도의회에서는 공약관리 TF팀을 만들어 도의원들의 공약사항을 파악하고 이행실태를 점검하자는 자성의 시도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유야무야 자취를 감췄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더불어민주당·시흥3)은 “도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지금의 공약사항 공개 방식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바꿔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 “다른 의원들과 함께 논의해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 어디서도 검증 없어…공약(空約) 아닌 공약(公約) 돼야
‘왜’ 공약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가. 선거 매니페스토는 국민(유권자)과의 기본적인 공적 약속을 책임지기 위해 정책 공약과 미래 비전 등을 구체적·공개적으로 문서로서 선언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 등을 기점으로 본격화 됐다. 이후 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은 연 1회 이상 선거 매니페스토 공약을 제시하고,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그 이행실태를 정기 조사한다.
하지만 매니페스토 활성화 20여년에도, 지방의원은 아직 평가 대상자가 아니다. 지방의원 입장에선 ‘굳이’ 공약을 공개하지 않아도 딱히 문제가 없다. 아울러 당 내 공천 과정에서도 공약 이행 실태가 중요 요소는 아니라 지방의원의 공약은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다.
박찬현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지방의원의 선거공약 이행과 의정활동 전반을 제도적으로 점검·감시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의정활동의 투명한 공개와 데이터화가 우선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 차원에서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등이 지자체장 공약이행 평가를 하고 있는데 지방의회도 이와 유사하게 의회 차원의 공약 이행 평가위원회를 두는 방안이 있다”며 “이 위원회에 행정전문가, 시민단체, 회계·감사 전문가 등을 포함시켜 외부인이 참여하는 공약 점검을 실시하면 실천 여부 등도 체계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