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배 디지털뉴스부장
산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경북 의성과 안동, 경남 산청·하동, 울산 울주 등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해 순식간에 수만㏊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희생자가 늘어나고 수만명이 대피소로 몸을 피해야 했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모든 장비를 총동원했으나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투입된 전국의 산불 진화 헬기들은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을 진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25일 의성 산불에 투입된 헬기가 추락하며 조종사 한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국가 재난 상황을 지켜보며 한 비행기의 존재가 절실하게 떠올랐다. ‘고정익 소방항공기’.
헬기처럼 회전하는 날개가 아닌 고정된 날개를 가진 항공기로 해외의 산불 진압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비행기다. 고정익 소방항공기는 헬기보다 훨씬 강력한 물 투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강풍이나 급변하는 기상 상황에서는 헬기의 화재 진압 투입이 어려워 산불의 초기 차단 및 확산 방지에 한계가 있다. 반면 고정익 항공기는 강한 바람에도 운용이 가능하며 헬기에 비해 넓은 작전 범위와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그 비행기가 있었더라면 이번 산불 진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소방항공기 도입 요구는 이전부터 있었다. 21대 국회에서 의정부를 지역구로 둔 소방관 출신 오영환 의원은 고정익 항공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2023년 5월 국회 소방청 현안질의에서 “고정익 항공기, 즉 비행기를 활용한 산불 진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소방청을 설득하는 데 힘썼다.
또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에서는 ‘산불진압 소방항공기의 특징과 효율적 운용방안 연구’라는 정책자료집을 통해 고정익 항공기 도입의 당위성을 재차 역설했다.
고정익 항공기는 국내에서 잠시 도입한 적이 있다. 2012년 경남에서 헬기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저수 능력을 갖춘 캐나다산 기종의 고정익 항공기를 연간 120일간 20억원에 임차 도입한 바 있었다. 하지만 비싼 임대료와 야간 산불 진화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계약이 중지됐다.
고정익 항공기가 국내 실정에 안 맞을 수 있다. 항공기가 비행하며 물을 담을 만한 강이나 호수가 마땅치 않아 공항에서 소방차를 이용해 물을 받아야 하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산이 많은 국내 지형에는 항공기보다 헬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국내에는 고정익 소방항공기가 없다. 도입 시도는 있었다. 지난해 산림청이 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군 수송기에 물탱크를 부착하는 방식을 추진했으나 국방부의 협조를 얻지 못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대형 산불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악의 산불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다.
이제는 고정익 소방항공기 도입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소방항공기를 국가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예산과 운영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고정익 비행기 도입이 힘들다면 담수 능력이 큰 산불 진화 헬기를 더 많이 도입해야 한다.
대응을 미룬다면 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가 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오지만 대응 체계는 미리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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