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 논설위원
친구 중에 ‘잠’ 예찬론자가 있다. 잠을 잘 자야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며, 잠을 생활의 1순위로 꼽는다. 그는 은퇴 이후 하루 평균 8~9시간씩 잔다. 고3 때도 8시간은 잤다고 한다. 잠 잘자는 비결을 물으니,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됐단다. 아버지가 9시 뉴스가 끝나면 ‘이불 펴라’ 하셨다고.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잠 퍼자기 대회’가 열렸다. 한강 야외에서 평온하게 잠에 빠진 진정한 잠의 고수를 찾는 행사였다. 서울시가 ‘멍 때리기 대회’에 이어 마련한 이벤트다. 잠 퍼자기 대회는 직장 생활, 공부 등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날 대회에는 잠옷 차림의 시민 100여명이 참가했다. 저마다 안대와 마스크, 베개, 담요 등을 챙긴 뒤 에어 소파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처음엔 한낮에 야외에서 잠을 자는 게 어색한 듯 뒤척이는가 싶더니 하나둘 숨소리가 커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대회 우승자는 잠을 자면 심박수가 떨어지는 점에 착안해 기본 심박수와 평균 심박수 간 변동 폭이 가장 큰 참가자로 결정했다. 잠이 들면 심박수가 20∼30% 떨어지는데, 대회 시작 전과 비교해 심박수의 편차가 큰 참가자를 우승자로 정했다. 이를 위해 참가자들은 팔목에 밴드를 찼다.
이날 ‘잠 최고 고수’는 용인에 사는 대학생 양서희씨가 뽑혔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평소 침대 맡에 두던 ‘잠만보(포켓몬 캐릭터)’ 인형을 안고 온 양씨는 “버스만 타면 자는 편”이라며 “버스에서 졸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종의 마인드컨트롤을 했더니 깊게 잠들 수 있었다”고 했다.
수면 부족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2018년 85만5천25명에서 2022년 109만8천819명으로 28.5% 늘었다. 각종 스트레스와 스마트폰 과다 사용 등으로 불면증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부족한 수면 시간과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신체와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다. 잠 잘 자는게 능력이고, 복이고,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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