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임대업자 김모씨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 방식으로 사들였다. 6월 기준 소유 주택이 1천139채에 달했다. ‘빌라왕’ 김씨는 지난 10월 서울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 중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1천채 넘는 빌라·오피스텔을 소유한 김씨는 교묘한 수법으로 세입자들을 농락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전세 계약 당시 임대인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계약 후 집이 김씨에게 팔렸다. 임대인이 전세 사기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김씨는 돈이 없다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고, 60억원 넘는 종부세 체납으로 집에 압류까지 걸리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날릴 처지가 됐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지난 4월 온라인에서 피해자 모임을 만들었다. 피해가 확인된 가입자만 400명이 넘는다. 김씨는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받아내기가 더 막막해졌다.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구상권을 청구할 집주인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보상을 못 받고 있다.
2019년 빌라 594채의 보증금을 갖고 잠적한 진모씨 사건, 확인된 피해자만 335명에 달하는 ‘세 모녀 전세 사기’에 이어 또 역대급 전세 사기가 터졌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데 정부는 뭘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 중엔 20, 30대 세입자가 상당수다. 전세 사기범 때문에 청년들의 생활 터전이 파괴되고 있다.
빌라를 100채 이상 가진 사람이 수도권에 30명이 넘는다고 한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빌라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평균 82% 정도다.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깡통 전세’가 늘고 있다. 언제 또 전세 사기 폭탄이 터질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거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전세 사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벌, 확실한 재발방지책이 절실하다. 피해자 구제책도 강구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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