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교묘한 동물학대…양형기준 부재가 미흡한 처벌 부른다

동물학대. 연합뉴스

# 지난 2019년 5월 이천에선 20대 A씨가 한 식당 앞에 묶여있던 진돗개를 상대로 성관계가 묘사되는 행위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재판부는 A씨 행위를 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도구나 약물 등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사용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로 동물학대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동물학대 범죄가 수법이 교묘해지고 잔혹해지는 상황에서 명확한 양형기준이 없어 미흡한 처벌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죽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상해를 입히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돼 있다. 문제는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양형기준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판사가 형을 내릴 때 참고할 만한 가중사유나 감경사유 등의 양형기준이 없다 보니 판사마다 형량이 들쑥날쑥하고 이는 결국 소극적 판결로 이어지는 상황.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법무부 등으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피고인은 전체 4천221명 중 단 4명에 불과했다. 1천965명(46.6%)과 1천372명(32.5%)은 각각 불기소와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122명(2.9%)만 정식재판으로 넘겨졌는데, 실형을 받은 건 최근 5년 간 346명 중 19명(5.5%)에 불과했다.

앞서 A씨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에서 불법 도살장을 운영하다 붙잡힌 60대 B씨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은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본보 2021년 9월 27일자 1면)를 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최근에는 SNS로 동물학대 장면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범죄 수법도 잔혹해지는 만큼 조속히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도 지난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동물학대 관련 범죄의 양형기준 마련을 요청했다. 하지만 작년 4월 출범한 제8기 양형위원회는 다른 시급한 양형기준 대상보다 법정형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동물학대 관련 양형기준은 설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권유림 법률사무소 율담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없으니 재판부의 동물에 대한 인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21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 선고된 동물학대 사건은 징역 2년6개월로 역대 최고 실형이 나왔지만 그간 유사한 사건에 대해선 형량이 적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잔인한 동물학대를 막기 위해선 양형기준 설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동물학대 양형기준 마련과 관련해선 여러 동물보호단체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설정 요청이 들어온 게 사실”이라며 “내년 4월에 들어서게 될 제9기 양형위원회에선 동물학대 양형기준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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