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광객 흥미 잃고 방치되는 촬영지/‘가망 없다’ 싶으면 철거하는 게 옳다

‘드라마 영화 촬영 명소’가 지역 관광의 효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경우에 따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이런 까닭에 촬영지 발굴과 투자는 지자체 문화 행정의 주요 영역이 됐다. 본보가 영화, 드라마, 아이돌 촬영지로 알려진 도내 몇 곳을 둘러봤다. 한때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주변 상권까지 북적대던 명소들이다. 지속적인 관광 자원화를 위해 지자체가 투입한 예산도 적지 않은 곳들이다. 실망이 크다.

구리시 아천동에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있다.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구려 체험학습관이다. 촬영지 이전에 박물관이 본래의 역할이다. 그런 여기서 영화 ‘안시성’, 드라마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사임당 빛의 일기’, ‘환혼’ 등이 촬영됐다. 계속된 드라마·영화 노출로 ‘촬영 명소’가 됐다. 한때 지역 관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관광객이 사라졌다. 촬영 시설 곳곳은 부서지고 무너져 있다.

양주 장흥면에 ‘일영역’도 확인했다. 폐역인 이곳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다. 방탄소년단(BTS)의 뮤직 비디오에도 등장한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이 본 관광객은 없다. 상가엔 ‘임대 문의’만 붙었다. 양주시 ‘전원일기 마을’도 봤다. 국민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의 배경이 된 곳이다. 동네 명칭을 삼하리에서 전원일기마을로 바꿀 정도였다. 역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 왜 ‘전원일기 마을’이었는지 이유조차 찾기 힘들다.

관리 부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전시관 곳곳이 부서졌다. 건물 외벽도 해져서 내부 골재가 흉하게 노출돼 있다. ‘일영역’에는 공중 화장실도 없다. ‘전원일기 마을’ 종합안내도에 전화번호와 홈페이지가 적혀 있다. 해봤더니 전화도 홈페이지도 불통이다. 전시관이라는 곳은 풀에 파묻히다시피 했다. 세 곳 모두 누가 봐도 ‘버려진 곳’의 모습이다. 손 뗀 지 오래된 것이 틀림 없다. 지자체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게 관리 부실만 탓할 일인가. 짐작컨대 먼저 관광객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 이후에 행정도 관심을 줄여갔을 것이다. 촬영지 관광이라는 게 그렇다. 어떤 드라마·영화의 어떤 장면이 명소가 될지 누구도 모른다. 촬영 명소가 갑자기 한산해지는 이유도 알 수 없다. 10억, 20억원씩 선(先)투자했다가 낭패 본 실패 사례까지 여러 지자체에 있다. ‘촬영지에 왜 관광객이 없느냐’는 질책은 그래서 현실을 모르는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다른 요구를 전하고자 한다. 관광 기능 상실한 촬영지라면 없애라. 한번 사람 떠난 촬영지는 다시 붐비지 않는다. 그런 예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그게 유행을 좆는 촬영지 명소만의 특징이다. 이 가능성 없는 기대 때문에 텅 빈 폐가에 계속 돈 쓰고 집 지키라며 사람 둬야 하겠나. 뜯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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