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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1_그는 누구인가] 다양한 국정 경험 살려... 경기교육에 ‘새바람’
6·1 지방선거

[선택 6·1_그는 누구인가] 다양한 국정 경험 살려... 경기교육에 ‘새바람’

경제일꾼 꿈꾸던 샐러리맨, 공무원으로 전향 후 3선 의원까지
대통령실 실장·대학 총장·尹당선인 특별고문 거쳐 교육감으로
“유권자·학부모가 주신 ‘명령’ 따라 교육계 균형 바로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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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자릿수 등수가 바꾼 인생

임태희는 1956년 12월1일 성남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성장했다. 성남 판교 태생인 임태희는 낙생초와 양영중을 나온 뒤 곧장 서울로 유학(遊學)을 떠났다. 서울 경동고에 입학한 후 탄탄한 체격과 운동 감각을 바탕으로 유도에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입학 후 치른 첫 시험에서 반 46등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들며 충격을 받았다. 난생처음 두자릿수 등수를 받은 임태희는 이날부터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고, 잘 다니던 유도부를 그만두겠다고 선포(?)했다가 한동안 유도부 선배들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했다. 이후 임태희는 재수 끝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 은행 입사 6개월 만에 공무원으로 변신

진로를 고민하던 임태희는 대학년 4학년 시절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친구들을 따라 행정고시에 응시했다. 1차에 합격했지만, 시험 준비 대신 취직을 선택했다. 한 가족의 장남으로 하루빨리 집안 생계를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지만,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글로벌한 경제 감각을 키워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택했다.

꿈을 펼칠 일터로 금융권을 생각한 임태희는 그중에서도 외환은행이 꿈의 근사치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생각해 취직하게 됐다. 하지만 외화 부족으로 여행비 환전은 물론이고, 토플시험 응시료까지 심사를 거쳐 송금할 만큼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던 시절에 입사한 터라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고 경제적 약소국의 서러운 처지를 실감하게 됐다.

고민 끝에 은행 문을 나온 그는 행정고시 2차에 도전, 6개월간 조용한 시골집 뒷방에 들어가 책과 씨름을 한 끝에 합격했다. 그렇게 경제 일꾼을 꿈꾸던 샐러리맨은 6개월 만에 공무원이 되면서 인생 항로의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 1년 반의 영국 생활과 ‘엄마 학교’

재무부 사무관이 돼 일벌레로 살았던 임태희는 1996년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았다. 2년 동안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연구원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새로운 길을 떠난 그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영국 생활을 만끽했다. 결혼 이후 12년 만에 찾아온 단꿈 같은 보너스였다.

보통 사람들은 정시에 출근하고, 어둑어둑해지면 퇴근하는 평범한 생활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임태희에게는 꿈 같은 얘기일 뿐이었고, 그에게 허락된 행복은 2년을 넘지 않았다. 1997년 말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고, 국가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국민은 깊은 좌절에 빠졌다.

6개월만 있으면 예정대로 귀국할 수 있었지만, 임태희는 “명색이 경제부처 공무원인데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나 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을 가족에게 꺼내고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출사표 ‘국민을 위한 마음, 더 크게 쓰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태희는 대통령 경제비서실에서 일했다. 그가 안게 된 현안은 은행권 구조조정. 말 그대로,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그는 이 당시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정치를 해야겠어’, ‘가만있으면 국장 승진하고 평탄하게 잘살 텐데 뭐하러 가시밭길을 가려 하느냐’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의 결심을 되돌릴 순 없었다.

이후 고향인 분당에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했다. 특별한 전략이나 거창한 슬로건 같은 건 없었고, ‘국민을 위한 마음, 더 크게 쓰겠습니다’가 전부였다. 이날을 기점으로 그는 제16·17·18대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되게 된다.

■ 지기추상 대인춘풍

국회의원과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실 실장, 한경대 총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에 이르기까지. 여러 보직을 거친 임태희는 지난 4월17일 수원특례시에서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경기교육의 새로운 변화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말과 함께 지난 13년간 굳건히 지켜온 진보 교육감 시대를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학생 인권조례로 인한 학교 교원의 불균형, 9시 등교 폐지 등 여러 화두를 던지며 획일적·편향적 교육정책을 과감 없이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육 정책의 뿌리가 되는 ‘HIGH’(하이)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이는 △High Tech(디지털 지능 DQ역량 강화) △Infinity(한계 파괴) △Glocal(언어로 국제교류) △Happy(행복은 교육부터) 등 4가지 단어를 줄인 말이다.

임태희는 경기도교육감으로서 이제 다섯 번째 공직을 수행하려 한다. 그는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을 인용해 “도교육감의 역할은 경기도 유권자와 학부모가 주신 ‘명령’이라며, 교육계 균형을 바로 잡을 것”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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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성남 낙생초 은사님과 함께, 공군 장교로 군 복무할 때, 대통령 실장 재직 당시 공관에서, 2일 오후 당선증을 받고 있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조주현기자

학력

-성남 양영중 졸업

-서울 경동고 졸업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경영학과 객원연구원

-제24회 행정고시

 

경력

△ (전) 제16·17·18대 국회의원

△ (전) 고용노동부 장관

△ (전) 청와대 대통령 실장

△ (전) 국립한경대 총장

정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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