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4. 살아있는 유령들
사회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4. 살아있는 유령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본국 말도 모르지만, 신분적 특수성 고려 난민은 출생신고 어려워
대입 꿈은 커녕…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
권인숙의원 ‘외국인아동 출생등록’ 법안 발의 예정

image

집에선 ‘달리아’로 부르지만 밖에선 ‘미등록 아동’입니다

난민 아동들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며 꿈을 꾸고 싶을 뿐이다. 평범함은 그들에게 사치다. 확실한 신분만 보장돼 있다면 사치를 부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그들이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 중 체류자격이 없어 미등록 상태가 된 아이들. 난민을 포함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현재 국내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관련 시민단체들은 약 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쩌면 그 숫자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달리아의 공포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소개된 달리아(가명)의 사연은 미등록 난민 아동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달리아의 부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 들어온 뒤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류자격이 불안해지면서 당시 18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달리아 역시 미등록 상태가 됐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 살지만 조심해야 한다. 언제든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질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을 달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던 부모님의 충고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현장 학습을 가야 하는데 주민번호를 적어낼 수 없었다. 달리아는 자신의 신분이 들통날까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됐지만 불안한 자신의 신분 탓에 대학에 갈 수 없겠다는 절망감이 그를 덮쳤다. 친구들이 “대학 어디 갈 거야?”라고 물어도 달리아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학은 고사하고 언제 부모님의 나라로 쫓겨갈지 알 수 없어 두려울 뿐이었다.

달리아는 “솔직히 본국(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잘 모른다. 말만 조금 할 수 있고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못한다. 한국사는 게 당연하고, 여기서 자라왔는데, (본국에 가게 되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그냥 무인도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라며 “인권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라고 배웠는데, 내가 자라고 살아온 이 땅에서는 그 권리를 찾으면 안 된다는 신호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image

■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난민이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출생신고는 불가능에 가깝다. 본국 정부에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 보니 자녀들은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주민들의 자녀들도 본국에서의 출생 신고,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요구받으면 등록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양한 이유로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될 권리를 갖는다.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비준국으로서 이 협약을 지켜야 하지만 실행할 법이 없다. 한국과 부모의 국적국 어디에서도 출생 등록이 되지 않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된다. 이들은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받을 수도 없고, 아동이라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최근 학교를 다니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두천가톨릭센터 이석재 신부는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인터넷 사이트 회원가입도 못한다. 청소년들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할인도 받지 못해 성인 요금을 내기도 한다”며 “아이들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추방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불안해한다. 최소한 체류기간이라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주아동도 출생 등록이 가능하다?

그동안 미등록 이주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실시됐다. 법무부에서는 지난해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대상 선정 기준이 엄격하고, 오는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 시흥시에서는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려 했지만 지난 4월 상위법 위반을 이유로 각하 결정됐다.

어렵게 마련된 대책들이 무산되면서 아이들의 출생이 신고될 권리가 잊혀 가던 중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외국인아동 출생등록’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당 법안은 미등록 외국인이 관할 시군구에 출생등록 신청을 할 수 있게 했고, 담당 공무원이 불법체류자를 발견하더라도 출입국 관서에 통보하는 의무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권인숙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6월 초쯤 발의할 예정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성안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