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인천시민은 민선 8기 인천을 이끌어 갈 적임자로 국민의힘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를 선택했다.
유 당선인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역 시장인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를 누르고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유 후보는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36세에 김포군수를 시작으로 인천서구청장, 김포시장을 전국 최연소로 역임했다. 이후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을 누르고 민선 6기 인천시를 이끌기도 했다.
특히 유 후보가 공약한 수도권매립지 관련 대체매립지 조성,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뉴홍콩시티 조성 등이 시민들의 표심을 자극,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재선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시 한번 인천을 이끌어 갈 유 당선자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 어릴 적부터 지·덕·체 겸비
유 당선인은 지난 1957년 6월6일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인 수도국산에서 4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유 당선인은 월남한 부모로부터 형제간 우애와 정직, 겸손, 배려, 근면 자세를 교육받으며 자랐다.
유 당선인은 어렸을 적 친구들과 축구하기를 좋아해 해가 떨어지기 전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공을 잘 차 ‘유세비오’란 별명도 얻었다.
유 당선인은 축구 실력 뿐 아니라 학업 성적도 뛰어나 명문고인 제물포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유 당선인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포장마차를 운영해 그 수익금을 고아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 단돈 1만6천원을 들고 제주행 무전여행을 다녀오는 등 20대 초반에 젊음의 호기를 마음껏 누리기도 했다.
유 당선인은 이후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전도양양한 공직의 길을 개척하고 강원도청, 행정안전부, 경기도청에 근무한 뒤 김포군수로 발령받으며 김포와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유 당선인은 또 육군 학사장교로 임관해 최전방 부대인 강원도 양구에서 병역의 의무를 끝냈다.
■ 주민의 뜻을 거르지 못하고 정계에 발을 딛다
유 당선인은 지난 1994년 36세의 나이로 최연소 김포군수에 임명받았고, 1995년 3월엔 인천 서구청장으로 발령받았다. 이로써 또 다시 전국 최연소 구청장 타이틀을 하나 더 획득했다.
하지만 서구청장 발령 후 연일 김포시민 100여명이 몰려와 주민 5천여명이 서명한 연명부를 제시하며 유 당선인의 김포군수 출마를 요구했고, 심지어 농성까지 벌이는 촌극이 벌어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서울, 인천 등 김포 출향 인사 대표들도 유 당선인의 출마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유 당선인은 앞날이 탄탄한 고위공직자의 길을 접고 결국 선거 20일 전 무소속 후보로 출마를 결심했다.
유 당선인은 15개월간 김포군수로 재직한 것 외에 어떠한 지연, 학연, 혈연, 정당 없이 ‘4무(無) 선거’를 치른다. 김포시민 10만여명, 유권자가 6만여명이던 당시에 이 중 1만여명이 유 당선인을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로 나서기도 했다.
유 당선인은 결국 여·야 후보를 더한 표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했고, 한국 선거사에 신화를 남긴 인물이다. 유 당선인은 이 김포군수 선거를 통해 이후 3선 국회의원과 2차례 장관을 하는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 당선인은 흐트러짐 없는 공직관에 도덕성·청렴 갖춘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유 당선인은 난관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백범 김구 선생의 ‘선공후사’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 당선인은 자신을 잘 다스리고 솔선수범해 시민·국민의 행복을 늘린다는 뜻의 ‘수기안인(修己安人)’을 좌우명으로 삼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표본으로 불린다.
■ ‘결단의 정치인’ 유정복…‘버리면 얻는다(사즉득·捨卽得)’ 교훈 체득
유 당선인은 2014년 6월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전 3선 국회의원이자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인천시장에 출마한 상대 후보인 송 후보는 3선 국회의원 출신인데다, 4년간 인천시장에 재임해 인지도가 높은 상태. 그럼에도 당시 유 당선인이 속해있던 새누리당은 “유 장관이 시장 선거에 나가야 승리할 수 있다”고 권유했다. 결국 유 당선인은 의원직과 장관직을 던지고 흔쾌히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유 당선인의 ‘인천 출신의 힘 있는 시장’이란 캐치프레이즈는 300만 인천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1.8%p 차이로 승리했다. 출마 초반 뒤져있던 지지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더니 결국 대역전을 이뤄냈다. 당시 유 당선인은 이들 선거를 통해 눈앞의 이익이 아닌 대의를 먼저 생각할 때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교훈을 체득했다. 유 당선인은 이때 ‘버리면 얻는다’는 뜻의 ‘사즉득(捨卽得)’이라는 단어를 창안했다.
유 당선인은 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탄핵의 역풍으로, 신한국당이 수도권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유 당선인은 ‘바람이냐, 인물이냐’란 선거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1일 3~4시간을 자는 등 강행군을 펼친 끝에 승리했다.
이후 2014년 인천시장 선거에서도 유 당선인은 인천이 고향이라는 것 외에 정치적 인맥이나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매우 불리했다. 상대 송 시장 후보보다도 인지도가 낮은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유 당선인은 매일 자정까지 인천지역 전통시장 등 곳곳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해 인천 출신 첫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인천시장 선거에선 ‘인천 출신 첫 시장’이란 타이틀과 ‘트리플 크라운’(국회의원, 장관, 광역단체장을 역임한 정치인)의 명예를 안았다.
특히 유 당선인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인천시장에 당선하면서 그동안 국회의원 2선 이상, 장관 2번 이상, 광역단체장 2번 이상인 경우에 불리는 ‘더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써냈다.
■ 인천시장 재임 시절 ‘일 잘하는 시장’ 평가
유 당선인은 지난 2014년부터 4년 동안 민선 6기를 이끌면서 ‘인천 출신의 첫 시장’으로 뽑아준 300만 시민들에게 일과 성과로 보답했다. 유 당선인은 인천시의 빚 3조7천억원을 갚아 인천을 ‘부채오명 도시’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 유 당선인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인천발 KTX를 추진하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을 예비타당성 검토대상에 들어가도록 하는 등 인천의 교통망을 대폭 확충했다.
특히 유 당선인은 세계 주요 문자의 관련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다양한 해양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인천해양박물관, 박물관과 미술관을 조성하는 뮤지엄파크 등을 추진해 인천의 문화예술 발전을 앞당기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유 당선인은 제3연륙교 건설을 확정하고 서울도시철도 7호선 청라 연장선을 확정, 군 부대 탓에 산행을 금지하던 문학산 정상을 개방했다. 이 밖에도 유 당선인은 경인고속도로의 일반도로 전환, 검단신도시·루원시티 착공 등 인천의 해묵은 현안을 해결하면서 시민들에게 ‘일 잘하는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2018년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선거판 자체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했다. 유 당선인은 선거일 마지막 5일간은 철야 선거운동을 강행했지만,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웠고 결국 고배를 마신다. 이후 유 당선인은 2020년 4월 인천 남동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민주당이 180여석을 휩쓰는 등 광풍에 밀려 낙선했다.
유 당선인은 2번의 고배 끝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당내 치열한 경선을 거쳐 국민의힘 인천시장 후보로 나섰으며, 결국 재선 도전에 성공했다. 유 당선인은 ‘시민 행복,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 조성을 캐치프레이즈로 정해 박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하며 4년만에 설욕했다.
◇학력
- 송림초등학교·선인중학교·제물포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력
-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 육군 중위 전역
- 전 김포군수
- 전 인천 서구청장
- 전 김포시장
- 제17·18·19대 국회의원
-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 전 행정안전부 장관
- 전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 회장
- 전 인천시장
- 전 윤석열 대통령 후보 인천시 공동총괄선대위원장
김보람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