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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승자의 역사를 만들기까지] 현대사·인간상 반영한 투표물품
문화 G-Story

[선거, 승자의 역사를 만들기까지] 현대사·인간상 반영한 투표물품

아라비아 숫자 모르는 문맹 국민 많아
6대 대선까지 투표용지에 후보 기호 ‘막대표시’ 
1952년부터 20여년간 기표용구 대부분 대나무·탄피 사용
최초의 기표대·투표함은 나무로 제작… 선거용품 격세지감

‘바퀴’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말이 있다.

무거운 물건을 굴려 옮기던 최초의 바퀴 통나무는 판자와 결합하면서 수레가 됐고, 수레에 손잡이가 생기면서 마차가 됐다. 그 마차는 점차 자동차로, 기차로, 비행기로 발전하며 전쟁의 역사를 만들어냈을 뿐더러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이뤄내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바퀴의 재료 역시 나무에서 짐승의 가죽으로, 고무로, 금속으로 달라졌다. 이처럼 사물의 변화는 언제나 현대인의 편의를 추구하며 인간성을 고스란히 반영해왔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의 변천사가 있다.

투표방식은 물론이거니와 투표용지·투표함·투표용구 등 관련 물품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항상 새로워진 것이다. 지금은 재외국민선거나 사전선거 등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지지만 한 때는 이러한 선거 풍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과거 우리나라엔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한자가 병기되던 투표용지가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 남은 탄피를 활용해 만든 투표용구도 있었다. 아울러 독재와 같은 사건·사고를 거쳐오며 투표의 공정성 및 투명성 보장이 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나라였기에, 투표함도 목재에서 종이로, 플라스틱으로 바뀌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6·1지방선거를 한달여 앞둔 시점. G스토리팀은 현재 민주주의를 이룩하기까지 선거용품이 어떻게, 왜 달라졌는지 그 역사를 알아봤다.

 

 선거편 ②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물건이 선거용품으로 

1, 2, 3. 아라비아 숫자로 일, 이, 삼이다. 당연하게 읽히는 말이지만 예전엔 당연하게 읽히지 않았다. 육성으로 말하는 “일, 이, 삼”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지언정 글로 쓰는 ‘1, 2, 3’은 모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맹률이 높았던 탓이다.

전쟁 이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뤄 IT강국이 되기까지 국내 선거용품은 얼마나 변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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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한자 병기…숫자 대신 세로 막대 쓰던 투표용지

현재 우리나라 투표용지는 세로로 긴 형태다. 후보마다 기호 몇 번인지, 어느 정당 소속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가로쓰기로 줄줄이 나열돼 있다. 유권자는 후보 이름 옆 가장 오른쪽 빈 칸에 빨간색 인주가 든 내장형 도장을 찍으며 간편하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 초기 투표용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국내에 선거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한 초기는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 때를 기점으로 하는데, 이 무렵 투표용지는 가로로 긴 형태였다. 아라비아 숫자를 모르는 국민이 많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숫자 대신 막대 기호를 세로쓰기로 직접 적어내야 했다. 동시에 이 투표용지에는 후보자명이 한자와 한글로 함께 쓰여있다. 글 읽는 방법을 모르는 선거인들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제4대 대통령선거 투표용지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조병옥趙炳玉’을 뽑고 싶은 유권자는 세로 한 줄(│)을, ‘리승만李承晩’을 뽑고 싶은 유권자는 세로 두 줄(││)을 투표용지에 남기는 식이었다.

정당명은 들어가기 시작한 건 제3공화국 출범 이후다. 공직선거에서 정당추천제가 의무화 하고, 무소속 출마는 금지되면서 제5대 대선부터 투표용지에 정당명이 포함된 것이다. 막대 기호는 제7대 대선(1971년 4월)부터 사라져, 지금의 아라비아 숫자가 기호로 등장했다. 한자와 한글의 병기는 꽤 오래 유지되다 1992년 대선부터 없어졌다.

투표용지의 격변이 일어난 건 민주화 이후 지방선거가 부활하면서다. 1995년에 최초로 4개 선거(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 광역 및 기초의회의원)가 동시 실시되면서 전국단위 선거로는 처음으로 지금과 같은 ‘가로쓰기·세로정렬’ 투표용지가 사용됐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유권자 및 관리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각 선거별 투표용지 색상이 구분됐다는 점이다. 경기도지사 투표용지는 흰색, 경기도의원 투표용지는 하늘색, 수원시장 투표용지는 연두색, 수원시의원 투표용지는 살구색 등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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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손쉽게 볼 수 있던 ‘탄피’로 한 표 행사

그렇다면 이러한 투표용지들에 표기하는 ‘도구’는 무엇이었을까.

초기 선거법에는 기표용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가 쓰이곤 했다. 그 주인공이 대나무와 탄피다. 1952년부터 약 20여년간 전국의 기표용구 대부분은 대나무 및 탄피로 제작됐다.

특히 탄피의 경우 1950년 한국전쟁 이후로 사용 물량이 크게 늘어나자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기표용구로 탈바꿈한 역사적 아픔을 안고 있다. 조금 바꿔 말하면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넘게 한국사회에서 대나무처럼 흔하게 볼 수 있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게 탄피였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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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 기표용구

그러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부터는 기표대에 끈으로 묶어둔 흰색 플라스틱 용구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볼펜대도 쓰였다. 가볍고 편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분실 우려, 지역별 편차 우려, 폐기물 증가 우려 등이 골머리였다.

표준화된 플라스틱 기표용구는 1985년 들어 처음으로 나왔다. 제1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 사무의 표준화 및 용구·용품 개선이 이뤄지면서 일률적인 인주와 플라스틱 기표봉이 만들어진 셈이다. 전국에서 최초로 투표소마다 ‘똑같은 기표용구’가 비치됐다.

뒤이어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지나면서 2006년부터 인주가 내장된 일체형 기표용구가 탄생했다. 이전까지는 기표봉과 인주가 따로따로여서 선거인들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6장 이상의 투표용지에 기표해야 하는 동시지방선거 특성상 유권자들의 ‘편의’를 돕는 도구가 필요했을 때다. 이 용구는 이른바 ‘만년도장식 기표용구’로도 불린다. 이름 그대로 반영구적인 특성을 가지며 별도의 스탬프 없이 지금처럼 하나의 기표용구로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한 시초다.

■목재→철재→알루미늄→종이…기표대·투표함도 ‘새 옷’

시대가 흐르면서 투표용지와 기표용구만 변했으랴. 투표를 하는 자리, 투표용지를 넣는 통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국내 첫 기표대와 투표함은 모두 ‘나무’로 시작했다. 시기별·지역별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시대였던 만큼 비교적 값이 저렴한 목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독재 등의 한국적 사건·사고로 비밀투표는 보장해야 한다며 나름의 가림막은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기표대는 1985년 철재, 2004년 알루미늄, 2007년 종이 순으로 새 옷을 입어 갔다. 그러다 오늘날 개방형 기표대가 생겼는데 주된 배경은 ‘선거인의 기표 비밀을 보장하되 투표소 분위기를 밝고 쾌적하게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또 이전엔 장애인·노인 등 선거인들이 배제된 감이 있었지만, 이때부터의 기표대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도 투표가 가능하도록 높이가 낮아지는 등 시민들의 요구가 대폭 받아들여졌다.

투표함도 피차일반이다. 무게·부피가 적어 설치 및 철거가 간단한 알루미늄에서, 일회용 처리가 쉬운 종이를 거쳐, 봉인 기능이 강화된 강화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했다.

2012년부터 투표소를 지키고 있는 가장 최근의 투표함은 넓은 주둥이에 좁은 밑바닥을 가진 디자인으로, 보관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투·개표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자 투표함 덮개 안쪽에 고유 식별번호가 내장된 전자칩이 부착됐다.

이러한 선거용구는 현재 수원 선거연수원 별관동에서도 볼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월3일까지 특별전시회 <대한민국 선거 어제와 오늘>을 열고, 선거사료 200여 점을 공개하고 있어서다. 김동률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 공보계장은 “1948년 초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이래 올해까지의 모든 선거 역사를 총망라해 돌아보고 현대사의 변곡점이 됐던 주요 사건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며 “선거용품을 통해 아름다운 선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선거관리위원회와 국민들의 민주선거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어 의의가 있다. 선거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겨 참여, 공정, 화합의 모습을 만들어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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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ory팀=이연우기자, 민경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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