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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의 이심전심] 침소봉대, 봉대침소
오피니언 송경용의 이심전심

[송경용의 이심전심] 침소봉대, 봉대침소

침소봉대, 봉대침소. 작은 바늘을 몽둥이처럼 말한다는 뜻이다. 또는 몽둥이처럼 큰일을 작은 바늘만 한 일로 여기는 것이다. 의도적 과장과 축소가 심하다는 뜻으로 실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상태나 일은 크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작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플 때는 자신이 제일 아프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신이 제일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은 다 사연이 있어서이거나 작은 실수 또는 미미한 것이고, 남이 잘못한 일은 고의적이거나 책임을 져야 하는 큰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좋은 일, 잘한 일에 대해 자신이 보상을 받은 것은 적게 받은 것이고 다른 사람의 보상은 실제보다 크게 받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필자는 자신의 과거, 현재의 처지, 미래에 대해 과장이 심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이 낮은 분들과 수십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그런 태도와 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왕년 없는 사람 없다고 주로 과거에는 한 가락 했고 현재의 어려운 처지는 자신의 사소한 실수와 다른 사람의 잘못이며 미래는 창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사람의 마음 상태와 처지와 문제 해결 방안까지를 알 수 있게 돼있다. 따라서 약자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늘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 하더라도 공감하고 반응하면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약자들의 과장과 축소, 소망은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목소리는 크고 이야기의 과장과 비약은 크지만 듣다 보면 그저 한 인간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거리에 오고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일 뿐이다. 어깨에 ‘차카게 살자’를 새겼든, 손목에 ‘우정, 일편단심’을 새겼든 마음은 똑같다. 그 글자들을 새긴 연유도 대부분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조금이라도 강하게 보이고 싶은, 자신도 배제당하거나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어딘가에 속한 사람이라는 하나의 과시적 표현 또는 간절한 소망이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도적이고 왜곡된 과장과 축소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돼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많은 힘을 가질수록 정직과 책임이 있는 언행은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모든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에 기초해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은 개인적인 관계, 크고 작은 집단 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넓게 보면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각자가 보호받고 존중받으며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실을 왜곡, 과장, 축소하는 언동은 이런 기본적인 믿음,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이 깨진 관계, 사회는 각자도생, 약육강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으므로 위험한 것이다.

나의 것이나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크게 과장하거나 축소한다고 해서, 나의 아픔과 상처라는 사실이 줄어들 리도 없고 더 커질 리도 없다. 올바른 치유와 치료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고 그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 대신 하소연해주거나 대변해주는 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는 약자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연민의 마음으로 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힘이 있는 사람들, 집단의 왜곡, 과장, 축소는 개개인의 건강한 삶에 해악을 끼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생각으로 단호하게 비판하고 배척해야 한다.

침소봉대도, 봉대침소도 모두 옳지 않다.

성서에도 남의 눈에 있는 티끌보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라는 말씀이 있다.

건강한 삶, 따뜻한 사회는 누구라도 자신부터 사실 앞에 정직하고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부터 가능하리라 믿는다.

어느덧 무성했던 형형색색의 잎들에 가려 있던 나무의 가지가 드러나고 있다. 맨몸으로 정직하게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사실과 진실 앞에 마주 설 수 있기를. 우리의 삶과 소망을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견디어 내고, 더 단단해져서 더욱 푸르고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송경용 성공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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