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 남겨진 마을] 역사 잇는 가문들, 진위면의 '대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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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정가(家) 집성촌인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산대마을에선 매년 음력 9월 9일,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인 삼봉 정도전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사진은 정도전 사당에서 제를 올리는 후손들. 조주현기자

무심코 지나던 길목에 조선 건국의 역사가, 독립운동의 흔적이 묻어 있다. 2천년 평택 역사의 중심 진위면 이야기다.

과거 진위면은 근대도시의 중심지였다. 관아와 향교가 자리하고, 천도교ㆍ기독교가 일찍 수용돼 각종 문물이 빠르게 도입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신장동과 서정동 사거리 일대에 기지촌이 발달하면서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교육 중심지가 점차 송탄으로 이동했다. 장기간 지역 문화를 선도해오던 진위면은 상공업이 뒤처지며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 지금은 벼와 채소 농사를 주산업으로 하는 ‘시골 마을’로 변모했다.

진위면에서는 지역 내 입지를 되찾기 위해 1980년대부터 많은 노력이 펼쳐졌다. 청호리에 LG전자 평택공장, 하북리ㆍ견산리ㆍ가곡리ㆍ신리에 홍원제지, 영풍제지, YKK한국 평택공장, 매일유업, 한국야쿠르트 평택공장, 롯데제과 등 150개가 넘는 기업체가 들어서며 마을이 커지는 듯했다.

최근에도 움직임이 활발하긴 마찬가지다. 진위4 일반산업단지가 조성 중임은 물론, 대규모 물류창고가 건립을 앞두고 있는 등 지역 재생을 위해 힘을 들인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농촌지역 특성상 매년 인구가 감소하는 탓에 ‘중심지 탈환’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진위면은 꼿꼿하게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려는 토착민들의 역할이 크다. 무봉산 일대 안동권씨, 태봉산 일대 단양우씨 등 유력가문이 수백 년간 진위 땅에 정착하면서 민속문화와 전통을 보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진위면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마을 안에서는 지역 문화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자리를 지켜오던 유력가문들이 직장과 학교를 찾아 타향살이에 나서며 뿔뿔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G스토리팀은 평택시 진위면의 변천사를 짚어보며 지역 문화 계승을 위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G-Story] 마을편 ③2천년 평택 역사의 중심... 전통체험도시 부활 꿈꾼다 

학교 담장을 넘어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사리손으로 우산을 나눠쓴 아이들이 소나기 아래 하하호호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899년 세워진 이 학교, 120년이 넘는 전통의 평택 진위초등학교에서 마주한 모습이다.

과거 이 학교는 평택지역 3ㆍ1운동을 이끈 핵심지였다. 진위공립보통학교(당시 명칭)에서 학생 20명이 만세 시위를 벌이면서 독립운동에 불이 붙었다. 학생 시위를 기점으로 천도교도가 많았던 야막리에서 박창훈이 주도한 추가 시위가 전개됐고, 뒤이어 봉남리ㆍ은산리 시위로까지 확대됐다. 오늘날 진위초교 옆 진위면행정복지센터에는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듯 ‘진위현청의 터이자 독립운동만세 자리’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진위면을 두고 “2천년 평택 역사의 중심” 또는 “평택지역의 혼이 서린 곳”이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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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과거 평택지역 3ㆍ1운동 핵심지인 진위초등학교(당시 진위공립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진위면행정복지센터에 ‘진위관아의 터이자 독립운동만세 자리’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도전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문헌사. 조주현기자

■유력가문 대대손손 집성촌 꾸려…풍부한 민속문화

 

고대부터 살펴보면 진위는 본래 마한과 백제의 영역이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는 충청도 팽성읍이었다가 경기도 수원군이었다가, 끊임없이 행정구역이 변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현재의 용인지역 일부와 합쳐지기도 했고 때로는 안성지역 일부를 아우르기도 했다. 유독 복잡하게 꼬인 고을인지라 품고 있는 역사도 상당하다.

2021년의 진위는 면적 34.02㎢ 규모로 총 1만1천360명이 거주한다. 그 안에는 ‘집성촌’이 많다. 무봉산 일대 경주이씨와 안동권씨, 태봉산과 덕암산 일대 단양우씨, 순흥안씨, 봉화정씨 등 토착세력이 유독 많은 마을이다. ‘여기 앞집’에는 이항복의 증손자인 이세필의 후손이, ‘저기 옆집’에는 고려말 학자 우현보의 후손이 사는 동네다.

해방 전후까지만 해도 마을마다 당제와 산신제, 정제(우물고사)를 지냈고 가신(家神)을 섬겼다고 한다. 공동노동조직 두레패를 운영하면서 지역민끼리 뭉치고, 정월 대보름에는 다 함께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도 하며 풍농을 기원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풍부한 진위만의 민속문화가 특히 유명하다.

■정도전 후손의 마을, 은산리 주민 70% ‘봉화 정씨’

진위를 대표하는 세력이 있다면 봉화 정가(家)를 빼놓을 수 없다. 짧게 조선의 이야기를 전한다. 1392년 조선이 건국하면서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됐다. 위화도 회군부터 정몽주 사망까지, 조선왕조가 세워지는 그 모든 과정에 신진사대부 정도전이 함께였다. ‘최초의 조선인’ 삼봉 정도전의 후손들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을 기억한다. 제례 문화가 축소되는 마당에, 아직도 동네 사람 모두 모여 매년 봄ㆍ가을 제사를 함께 지낼 정도다. 올해도 2월(춘향제)과 10월(추향제)에 제를 올렸다.

정도전 후손들이 모여 살며 제를 지내는 곳이 바로 여기 평택시 진위면이다. 특히 은산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뤘다. 동네 사람끼리는 산 아래 터를 잡았다는 뜻으로 ‘산대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근 용인지역과 안성지역까지 5개가 넘는 행정리를 포함해 드넓은 땅 모두가 ‘산대’로 통칭된다. 산대마을 안에는 삼봉 선생을 기리는 사당(평택시 향토유적 제2호)과 기념관 등이 세워져 있는데, 조선경국전 등 정도전의 사상을 담은 삼봉집목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도 보관 중이다.

후손들은 대략 1401~1405년부터 산대마을에 정착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덧 600여 년째다. 현재 은산리에 거주하는 주민 192명(98세대) 중 70%가량이 정도전 선생의 후손이다. 삼봉의 20대 후손 정병옥 은산1리 이장(67)도 수십 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이유는 별것 없다. 물이 맑고 공기가 좋고 선조가 일궈놓은 터전이 여기라는 것. 그걸 지키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생각해 뿌리박고 있다는 것. 그뿐이다.

정 이장이 말했다. “현대화 물결 때문에 많이들 타지로 나갔죠. 진위에 기업체가 많으니 그만큼 외부인이 유입되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 세대가 교체되기도 했고… 많이 변했어요. 그래도 아직 60~70%가 봉화 정씨 사람들이니 삼봉 후손의 마을이 맞죠. 가장 융성했을 땐 6·25 동란 직후, 제가 태어났을 무렵인데 그땐 은산리만 5개 부락으로 나뉘어 400가구가 넘게 살았어요. 삼봉 후손들만 400가구요”.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후손 외에도 전통가옥이나 디딜방아 등 문화적으로 살릴 게 많은 동네에요. 예전에 역사마을 조성을 추진했는데 몇몇 반대로 실패했죠. ‘누가 관리하느냐, 힘만 들게 뭐하러 하냐’는 이유로. 우리 지역은 다른 개발보다도 전통문화를 살리는 방향의 개발을 해야 합니다. 주민 자체만으론 안 돼요. 다들 나이도 들었고…. 관(官)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요”.

■“진위 한옥 스테이ㆍ차(茶) 체험 등 ‘전통마을’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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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진위면 산대마을의 나지막한 산 위에 삼봉 정도전의 가묘가 자리하고 있다

진위면을 돌아다니며 가장 인상깊었던 말은 “서울 북촌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처럼 우리도 진위만의 문화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동천리 천년고찰 만기사에 있는 보물 제567호 평택만기사철조여래좌상, 봉남리에 있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0호 진위향교대성전. 이 외에도 이세필의 묘와 선도비, 경주이씨 상서공파 묘역과 영의정 이광좌의 묘, 안대홍 생가 등 진위면의 자랑이자 유산이 가득해 이를 알리자는 목소리다.

산대마을총회 총무이자 정도전의 21대 후손 정광섭씨(61)는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했다. “진위도 서울 북촌이나 전주처럼 전통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잘 살아보세’하던 옛 시절을 그리워만 할 게 아니라, 젊은 세대와 함께하면서 키울 방법을 모색해야 해요”.

그러면서 그는 강조했다. “은산리에 삼봉교육관과 기념관이 있듯, 진위 곳곳에 다른 문화적 아이콘을 심어야 합니다. 한옥 홈스테이, 전통 차 체험, 지역 내 야영 등 방법은 많아요. 활용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가 많은 동네니까요. 문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갖춰졌다는 소문이 나면 방문객도, 주민도 늘어날 거라 생각해요.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역사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럼 역사 관련 일자리도 창출되겠죠. 서서히 지역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데 경기도도 경기도만의 문화를 지키면 좋겠어요”.

G-Story팀=이연우기자, 민경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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