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면 후보들이 분주한 시장을 방문해서 주전부리 먹는 방송(먹방)을 하고 과일이며 채소를 사는 장면을 본다. 소위 민생 탐방의 현장이다. 그러면서 ‘제발 정치 싸움 그만하고 민생 좀 제대로 챙기라’는 쓴소리를 듣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이어진다. 너무 식상한 장면이라 이제는 그만 봤으면 싶다. 특히 ‘민생을 챙기라’는 말뜻의 왜곡이 심각하다. 방송에서 말하고자 하는 민생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하루가 멀다고 시장 방문해서 어묵과 붕어빵을 먹는 것을 보여주면 민생을 잘 챙기는 걸까?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장동 사건을 보면서 전직 법조기자와 얽혀있는 최고위급 출신 법조인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어떻게 저런 대단한 인물들이 모조리 한 곳에 모여 있는지 궁금하다.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이 대장동 기사 속에서 나올 때마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평생 흙탕물 근처라고는 가보지도 않은 분들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좀 더 내용이 밝혀져야 시시비비를 가리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수준이 그렇게 정의롭지도 또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국민이 뽑은 정치 권력이 해야 할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선출하지 않은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일이 바로 검찰 개혁이다. 기소 독점권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무한대로 확장하려는 검찰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이 뽑은 정치 권력을 수사권을 이용해 쥐고 흔든다면 결국 국민을 협박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혁하는 일이 나는 진짜 민생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라는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만들기까지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여론의 부담을 겪었지만 나는 그것이 정치 권력의 바른 행사였다고 믿는다.
언론 개혁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의 소금이기는커녕 온갖 분란을 도모하며 정파적 입장에 서서 정치질을 일삼는 언론 권력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출 권력의 직무 유기다. 법원을 향한 국민의 불신 또한 심각하다. 소위 전관이라는 불공정한 권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주고받으면서 재판을 거래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심각한 위협이다. 그런 의심을 없애주는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민생이 아니고 무엇일까? 정치 권력을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진짜 민생을 살피는 일이고 국민이 선거하는 까닭이다.
또다시 선거라는 이벤트가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가장 큰 권력인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먹방을 지겹도록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똑똑해야 머슴을 부릴 수 있다고 했다. 민주국가의 주인인 시민이 먹방에 현혹되지 말고 누가 진짜 일 잘하고 건강한 머슴인지 살펴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도대체 선거는 왜 하는지?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민이 뽑지 않은 보이지 않은 권력은 누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너무 어렵고 골치 아프다면 이것만이라도 따져보자. 도대체 언론이 떠드는 민생은 무엇인지 최소한 선거가 열리는 이 시기에 딱 1번만이라도 생각하고 또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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