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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수 칼럼] 北 담화, 유리병 다루듯 이 기회를 살려야
오피니언 김열수 칼럼

[김열수 칼럼] 北 담화, 유리병 다루듯 이 기회를 살려야

김여정 부부장이 바빠졌다. 종전선언은 흥미로운 발상이라는 24일의 담화에 이어 25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등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다시 밝힌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까다로운 조건을 덧붙였다. ‘대북 적대시 정책’이나 ‘이중 기준’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핵미사일 활동에 대한 이해당사국들의 반응과 대화 열망을 보고 이런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또 대화 재개를 계기로 북한 내부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잘하면 조건 관철을 통해 안보 위기도 해소하고 인도적 위기도 해소하는 ‘꿩 먹고 알 먹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북한은 지난 7월부터 또 다시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했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사거리 1천500㎞의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과 사거리 600㎞의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3까지 시험발사했다. 이정도면 국제사회가 나설 만도 한데 모두 뒷짐을 지고 있다. 유엔은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 내용을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미국도 점잖은 언술로 넘어갔다.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이 상황을 역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해당사국들이 얼마나 대화를 원하는지도 확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실용적 접근을 내세우면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의 대화를 희망한다고 했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기는커녕 오히려 핵 및 미사일 능력 확대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줬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제재하는 대신 외교적 노력에 방점을 둔 것이다. 중국도 양자 대화나 다자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내년 2월에 개최될 동계 올림픽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공적인 올림픽이 되려면 한반도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남북한 지도자들을 북경에 초청해 3자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바이든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해서 4자 정상회담을 해도 좋고 안 와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북한은 이를 꿰뚫어보고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북한은 대화만 재개되면 자신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의 급한 불은 경제 제재, 수해, 코로나19라는 3재(災)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올해 식량 약 86만 t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주민이 3개월치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북한은 또 마스크를 벗고 열병식을 하지만 언제 이 ‘청정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느끼고 있다. 제재완화도 필요하고 식량과 백신도 필요하다. 그런데 대화가 재개되면 이해당사국들이 제재완화와 함께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하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오히려 북한이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전제조건도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의 입을 틀어막고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것들이다. 북한은 여전히 남북관계에서 자신이 갑인 줄 착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김여정은 한국 사회의 북한과의 대화 열망만 알 뿐, 갑을 관계의 대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두드러기적 반응을 보이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조건이 까다로우면 일을 망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서두르지 말고 유리병 다루듯 이 기회를 살리고 관리할 필요는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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