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중앙은행의 시간이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p 인상 했고, 연준의 파월 의장은 연내 테이퍼링 시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모두 예상된 결과였고 모두 보통사람의 어려운 경제적 삶을 개선해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테이퍼링은 금융긴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팽창 속도를 줄여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찍어낸 통화량이 줄어드는 것은 내년 5월 이후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은 한은에 초점을 맞추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 인상하면서 경기회복 흐름의 지속, 물가상승 압력의 증가, 그동안의 금융완화 기조에 따른 금융불균형 우려 등을 지적했다. 경기회복 속에 물가상승 압력의 증가로 금리를 인상한다면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기회복은 양극화를 보이고, 물가상승도 공급측 요인 및 기저효과라는 점에서 단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금리를 인상한다고 단기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없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전에 비해 2.6% 올라 물가목표치 2%를 넘었지만, 공급측 요인인 농산품과 지난해 크게 하락했던 석유류 가격 상승률이 1.5% 포인트 이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한은의 물가관리는 약 3~4년에 걸친 ‘중기적 시계’의 기준이고, 지난 3년간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도 되지 않는다.
금리 인상의 결정적 요인은 과도한 집값 상승과 그에 따라 위험 수준에 이른 가계부채 때문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이 효과는 거두기 어려우면서 부작용만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은의 금리 인상 조치는 가계부채 폭증에 따른 금융 취약성이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한 면피성 조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을 자신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은이 금융불균형 지표의 기준으로 삼는 대표적 지표가 ‘신용갭’이다. GDP 대비 민간부문 대출 규모의 비중이 균형값을 초과하는 정도로 정의하는 ‘신용갭’이 2020년에 (10% 초과할 경우인) 경보단계를 한참 뛰어넘는 18.4%였다. 외환위기 때도 13.2%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역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경착륙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이 문제는 부동산정책과 통화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 억제 또한 효과보다는 실수요자나 무리하게 대출을 얻어 추격매수에 뛰든 사람, 그리고 생계형 부채를 짊어진 서민들의 부담만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은행이 추가로 공급한 돈이 73조원이었고 시중의 총통화량이 495조원 이상이나 증가했지만, 증가한 돈이 실물경제나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유통속도가 코로나19 직전에 0.659에서 지난해에는 0.605로 떨어졌다. 그런데 올해 1분기에는 0.589로 하락이 지속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보통사람의 경제적 삶의 개선과는 무관함을 반증한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기준 돈을 벌어 이자도 갚을 수 없는 중소기업의 비중이 절반이 넘었다.
경기 후퇴기에 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은 부유층의 자산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다. 부동산자산 상위 0.2%의 가계부채 비율이 317%(평균 부채 3억7천만원)에 달하지만, 하위 30%는 72%(평균 부채 2천만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금융자원 접근의 구조적 불공정성으로 금융완화정책은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자산시장 과열만 조장한다.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하면서 불필요한 자산시장 과열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외면한 결과다. 중앙은행이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돈을 공급하는 방식은 시중은행을 통해 국민에게 빌려주는 방식(금융정책)과 정부에 돈을 빌려줘 재정지출로 국민에게 돈을 곱급하는 방식(재정정책)이 있다. 기본적으로 양자 모두 총통화량을 증가시킨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으나 전자는 시중은행과 민간의 채무를 늘리는 반면, 후자는 정부의 채무를 늘리는 차이가 존재한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출이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 정부채무는 늘어나지만, 가계부채는 늘지 않고 부동산시장 과열도 막을 수가 있다. 그 대신 은행 등 금융회사나 재벌(건설)자본 등은 그만큼 돈을 벌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은의 통화정책은 보통사람보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와 금융불균형이 심해진다. 그리고 도래할 책임 추궁에 대한 핑곗거리를 만들면서 또다시 어려운 사람이나 실수요자 등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을 자본에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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