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원폭피해자의 악몽] 1. 원폭피해자 안식처 1번지 합천군

빛은 돌아왔는데… 어둠에 갇힌 원폭피해자

‘광복절(光復節)’.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압제로부터 광복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의 국경일이다. 76년전, 독립의 결정적 계기는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었다. 이 폭탄의 위력에 일제는 무릎을 꿇었고 한반도에는 해방의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주권을 다시 되찾았다는, 빛이 다시 돌아왔다는 광복(光復)에도 그림자는 있었다. 일제의 무자비한 폭거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이후 원폭투하로 인해 소리소문없이 스러져야했던 10만여명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들이 바로 그 그림자다.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 수십년의 울분을 마음속으로만 삭힌 그들에게 원폭의 상처는 아물지않고 현재진행형이다. 전국은 물론 경기도에도 일본 군수공장으로 강제 징집돼 원폭 피해를 본 1세대 180여명과 그 후손들이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무관심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경남 합천군에서는 원폭 피해자를 위한 복지사업은 물론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며 원폭 피해자의 설움을 달래고 있다. 이에 본보의 ‘경기ON팀’은 직접 경남 합천군을 방문해 원폭 피해자를 위한 합천군의 다양한 복지사업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원폭 피해자를 위해 경기도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합천 원폭자료관에서 심진태 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5일 오후 2시30분께 경남 합천군 합천읍 대야로 989.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원폭자료관’이 있는 곳이다. 원폭자료관에 도착하자마자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76년전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도 ‘검은 비’가 내렸다고 전해진다. 그날을 기억이라도 하듯 경남 합천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경기ON팀을 맞았다.

지상 2층으로 만들어진 원폭자료관은 1층엔 전시실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사무실, 2층에는 자료실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사무실이 배치돼 있었다. 전국 최초로 설립된 원폭 자료관이라고 하기는 건물면적이 471㎡(142평)가량밖에 되질 않아 마치 원폭에 대한 정부의 관심 정도를 반증하는 듯 했다.

합천원폭자료관 2층 자료실에서 관계자들이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다. 자료실에는 원폭 피해자들이 직접 당시의 상황과 피해상황 작성한 수기와 한국인 원자폭탄피해자 등록부, 1972년~1978년 원폭피해자 실태조사표 등 약 3만권의 자료가 보관중으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원폭자료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신고 1층 전시실로 들어서자 원자폭탄의 위력과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와 ‘팻맨(fat man)’의 설명이 적힌 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전시실은 크게 원자폭탄의 배경ㆍ피해ㆍ이해로 세 분야로 구성돼 있었다. 전시관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원폭 피해자의 증명사진과 각종 사료, 그리고 하나의 글귀가 경기ON팀을 맞았다. “전쟁은 끝났다.”…“우리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그 원폭의 후유증을 겪어내고 있는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들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무거운 뜻이었다. 이 글귀를 지나자 원폭피해자의 생생한 증언과 원폭 당시 피해상황을 증명해줄 수 있는 피폭지 기와, 그릇조각 등 사료들이 전시관에 전시돼 있었다.

자료관 2층으로 올라서자 직원들이 원폭 피해자들의 기록 등의 다양한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실물의 원폭 자료를 디지털화해 보관을 쉽게하고 누구나가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자료실에는 약 3만권의 자료가 보관 중이다. 자료들은 원폭 피해자들이 직접 당시의 상황과 피해상황을 수기로 작성한 것과 함께 한국인 원자폭탄피해자 등록부, 1972년~1978년 원폭피해자 실태조사표, 원폭피해자 구술증언서, 원폭관련 서적 외 다수, 일본국 소송자료, 소송기록부 등 다양한 자료들이 보관 중이다. 아울러 원폭 피해에 따른 진료비 청구서 등 원폭피해와 관련된 다양한 부분의 사료가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1층 쉼터에서 만난 김일조옹이 뼈마디가 앙상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윤원규기자

■ 원폭피해자복지회관과 1천145명의 魂

원폭자료관을 나와 도보로 2분가량 걸어가면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위치하고 있다. 1996년에 개관한 이 복지회관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한국인 원폭피해자 지원에 합의,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마련된 기금으로 설립됐다. 현재 104명의 1세대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머물고 있으며 각각 서울 1명, 부산 2명, 대구ㆍ경북 2명, 경남 1명, 합천 89명이다.

해당 복지회관에서는 ▲취미활동 ▲건강교실 ▲치료교실 ▲생신잔치 ▲야유회 등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취미활동으로는 공예교실과 다도교실, 요리교실이 진행된다. 또 미술, 원예 치료로 고령의 원폭피해자들의 치매예방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원폭 피해자의 생일잔치, 벚꽃놀이, 온천, 문화유적답사, 단풍놀이 등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복지회관에서 나와 건물 뒤편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1천145명의 원폭 피해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령각이 나온다. 작은 사당에 빼곡히 원폭 피해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위패를 보면 방문하는 이들의 숙연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위령각 옆에 있는 작은 안내 팻말은 숙연함과 함께 씁쓸함을 더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위해 한국인이 아닌, 다까하시 고오준이라는 일본인이 참회의 마음을 가지고 사비로 이 위령각을 건설했다는 설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령각에 모셔져 있는 위패들 역시 다까하시 고오준이 매년 한국 원폭 피해자의 넋을 기리며 자필로 이름을 직접 쓴 것으로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원폭 피해자에게 더 관심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지난 6일에는 이곳에서 ‘제76주기 원폭희생자 추모제례’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가 주관한 이날 추모제례에는 문준희 합천군수를 비롯해 배몽희 합천군의회 의장, 김윤철 경남도의원, 윤효석 경남도청 복지정책과장, 원폭피해자협회 임원진과 하재성 한국원폭피해자복지회관장 등이 참석했다. 이 추모제례는 1945년 8월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피해자 중 한국인 피폭자 10만명의 희생을 기리고자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합천원폭피해복지회관 전경. 윤원규기자

■ 김형률의 묘비석

위령각에서 출구방향으로 걸어나오다 보면 작은 뜰 한켠에 묘비석 하나를 목격할 수 있다. 김형률씨의 묘비석이다. 김씨의 묘비석에는 그의 의지를 담아 음각으로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가 쓰여져 있다. 故 김형률씨는 지난 1970년에 태어나 2005년 불과 35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은 잦은 병치레와 생사의 고비를 거듭했다. 김씨는 이 같은 고통이 원폭 피해에서 기인한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 때문임을 알게 된 후 원폭 피해 2세 환우의 인권회복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특히 지난 2003년에는 ‘원폭 2세 피해자들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라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내 최초로 자신이 원폭 후유증을 겪는 원폭 피해 2세임을 알렸다.

경기ON팀=이호준·최현호·김승수·채태병·이광희·윤원규기자

※ ‘경기ON팀’은 어두운 곳을 밝혀(Turn on) 세상에 온기(溫氣)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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