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럴 때면 생각나는 또 다른 노래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연중행사 중 하나였던 합창대회 날이다. 교내 여러 팀 순서가 지나고 잠시 적막이 흐르고 나서 북소리로 시작하는 전주와 함께 합창 ‘광야에서’가 시작됐다. 그 시절 가곡이나 찬송가 등을 선곡해 어렵게 연습을 했던 우리에겐 민중가요 ‘광야에서’는 매우 놀라웠고, 그날 대회에서 1등은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부른 팀에게 돌아갔다.
나는 지금도 1989년 그날 합창대회를 잊을 수가 없다. 함께 했던 선생님들도 기억한다. 전교조 탄압으로 자신은 물론 동료의 해직과 복직이 거듭되는 사회 분위기의 부당함 속에서도 우리에게 학생의 권리를 알려주신 분들이다. 이 때문에 학생 운영위원회와 대의원 활동을 하며 다른 학교와 연대를 하고, 학생의 날 기념식을 진행하고, 전교 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시행하는 등 일반 학교와는 다른 특별한 민주주의 교육을 글로서가 아닌 직접 경험하는 행운의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민주주의 의미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정보도 많이 부족했다. 지금은 성인이 됐고, 사회의 변화에 소리 내야 하는 시민 단체 실무자가 되고 나서야 다시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를 자연스럽게 시민 단체에 몸담게 했을지 모른다.
2008년 수원YWCA의 실무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소비자와 환경 관련 분야부터 청소년, 지역운동까지 주어진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처음엔 단어조차 어려웠던 UN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할 때쯤 세계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둘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현재는 청소년 교육의 더 많은 필요성에 관심을 두고 고민 중이다.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와 나눔의 목적으로 ‘아띤타바 미얀마! 힘내라 미얀마!’라는 시민문화제 기획을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활동하고 있다. 당일 행사에 YWCA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마무리에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이 오면’을 다 함께 부를 계획이다. 청소년에게 사회적 이슈를 알리고, 지구 온도 1.5℃의 의미와 기후 위기 대응 실천 행동으로 제로웨이스트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활동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해야 하는 등 공교육에서 배우고 느낄 수 없는 시간을 YWCA라는 학교 밖 공간에서 눈높이 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감수성을 담아주고 싶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의 청소년들이 나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고 또 다른 이에게 베푼다면 감수성 리뉴얼이고 더 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만약 혼자 가는 길이 멀다면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자원활동가와 함께 사회, 환경, 경제 분야를 고민해 지역사회에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듯싶다.
장소는 사람과 공간을 포함하고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서로 공감하며 언제든 편하게 찾아오고, 오래 기억되는 시공간의 장소, 수원YWCA와 함께 하는 한 사람이고 싶다.
변남순 수원YWCA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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