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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의 이심전심] “선호야 집에 가자”
오피니언 송경용의 이심전심

[송경용의 이심전심] “선호야 집에 가자”

지난 4월22일 300㎏이 넘는 철판에 깔려 죽은 23살, 대학교 3학년 이선호군의 추모제에서 이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고는 “선호야 집에 가자, 왜 거기 있어, 빨리 집에 가자!”라며 울부짖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주며 같이 슬퍼하고 울어주는 일밖에 없었다. 끔찍한 산업재해로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 아버지들과 함께한 추모제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갑자기 김민기 선생이 지은 ‘강변에서’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새벽에 나가 노을이 지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함께 밥을 먹고, 걱정도, 기쁨도 나누면서 서로 보살피는 것이 정상이지 않은가. 어깨가 늘어지고 눈이 쑥 들어가도록 힘들게 일을 했어도 맛있는 된장국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아무리 힘든 하루였어도 다시 힘이 나지 않겠는가. 어스름이 짙어지고, 별들이 밝아지고 공장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올라도 가족들은 오늘은 일이 많은가보다. 그래서 조금 늦는가 보다 하면서 밥상을 준비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다. 그 가족이 끝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어린 자식이 일터에 나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을 때 부모의 마음은 벌써 저 문밖에 나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부모의 마음과 발걸음은 마을 밖으로, 정류장으로, 점점 멀리 나가고 있을 것이다.

매일 만나고 같이 살고 있지만 컴컴한 저 길목 끝에서 다가오는 가족의 그림자만 보아도, 어깨는 축 처져 있고, 눈은 한 자도 더 깊이 퀭하게 들어가 있어도 얼마나 반가운가, 살아있는 그 손을 꼭 쥘 수 있고, 따뜻한 가슴을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이, 왜 이렇게 늦었느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느냐, 내가 늦고 싶어 늦었느냐, 종일 바쁘게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눈을 흘기기도 하고,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가!

지난 월요일에는 전철역 문틈에 끼어 죽어간 구의역 김 군의 추모식에서 또 한 번, 뚝뚝 끊어지며 좀체 이어지지 않는 숨을 다독이며 추모와 다짐의 말씀을 보태야 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갔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자식들의 가족과 함께 속 울음을 울어야 했다.

지난해 겨울, 자식을 잃은 어미, 아비들이 살을 에는 강추위 속에서도 30일 가까이 단식을 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을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침에 일터로 나간 가족이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너무나 상식적인 일을 위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연간 2천여명의 ‘우리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축소됐고, 더군다나 시행령 마련을 앞두고 경제(기업)단체는 물론이고 노동부까지도 유족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법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시행령 안을 내어놓고 있다. 이토록 슬프고 끔찍한 현실을 언제까지 감내하라고, 견디라고 할 것인가.

모든 생명에게, 심지어 미물들도 때가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다. 죽을 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고향을 향해 돌아눕고, 울부짖는다는 수구지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금은 5월이다. 바깥세상이 너무나 밝고 아름다워서 더 어둡고 아픈 가족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다시는 어린 자식의 영정 앞에서 “집에 가자!”며 울부짖는 어미, 아비가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댓전에 불을 밝혀놓아도, 셀 수 없이 많은 기차가 지나가며 강물이 일렁이고, 어두운 하늘에 별이 뜨고 지는 밤이 숱하게 지났어도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내 가족, 우리 이웃들의 영혼이 부디 평안하기를, 본인들의 아픔을 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서로 의지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유족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희망이 생겨나기를 기도한다. 자연을 찬미하며 밝고 명랑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5월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송경용 성공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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