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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칼럼] 완곡함과 애매모호함 사이
오피니언 전미옥 칼럼

[전미옥 칼럼] 완곡함과 애매모호함 사이

햇빛은 유혹하고 맑은 공기에 설레고 한결 훈훈해진 바람은 우리 손을 잡아끈다.

오월 연휴까지만 자제하자.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고 우리 스스로를 다잡는 초심이 아직 살아 있지만, 지금까지 폭발적인 감염이 일어났던 시간을 뒤로하고 꽤 관리 가능한 성공적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방역 당국의 관계자들과 더불어 외교 수장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우리의 경험을 공유 받고자 하는 해외 여러 나라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박은하 주영국대사의 해외 인터뷰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로 응했다는 점 외에도 먼저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고 절제된 언어로 우리의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잘 설명하면서 두 사람 모두 통일된 메시지를 내놓았다는 공통점이 인상적이다. 거기에 더해 조금 까다로운 질문을 함정처럼 던지는 진행자의 태도에도 포용과 공감의 자세를 담아 완곡한 어법으로 대답하고 있다.

외교 언어는 가치중립적이고 완곡어법의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싸웠다’는 표현도 “서로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다”로 쓰고, ‘크게 싸웠다’ 해도 “합의할 것이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정도로 표현한다. 설령 ‘말이 통했다’고 해도 “상대방의 입장에 동의한다” 정도로, ‘합의했다’ 해도 되지만 ‘확실한 의견일치를 보았다’에서 마무리한다.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해 출구를 열어놓은 듯한 이런 화법은 외교 언어에서 당연할지 모른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내는 주관적인 언어는 설화(舌禍)를 자초하고 외교적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의 국가 지도자들은 강성의 ‘스트롱맨’이 많다. 이 지도자들이 불신과 갈등을 초래하는 많은 상황은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음이 자주 목격된다.

그래서 작은 일도 더 크게 느껴지고 오해와 갈등을 증폭시키며, 심하면 강대국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출렁이고 경제에 어려움을 가져오는 상황을 자주 보아왔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실수였던 점이 많은 것을 보면 말하기에 앞서 극단적인 감정의 환기와 절제된 언어의 선택을 위해 시간을 버는 선행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사실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 모든 사람들의 언어는 이런 면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뜨거운 기질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애매모호한 화법은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답답하고 기계적인 중립을 가장한 잘난 체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갈등과 혐오, 오해를 부추기는 데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언어생활이 영향을 미친 부분도 크다. 특히 공인들이 욕설과 다름없는 거친 발언을 한다거나, 주관적인 견해를 여과 없이 말함으로써 공감은 얻지 못하고 또다시 욕으로 그야말로 ‘응징’을 당하는 악순환을 보면서 완곡한 언어의 높은 가치를 믿고 활용한다면 큰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못 만나고 지냈다. 이후 누굴 만나든 부드럽고 완곡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낸다면, 반대로 내 의견을 경청해주고 존중하는 사람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오랜 시간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시국의 성찰로 귀한 결실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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