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법 사각지대 놓인 다세대주택

도내 주택임대관리업체 ‘전·월세 사기극’ 극성
이중계약에 날아간 희망… ‘법적 안전망’ 시급하다

그날은 모두에게 ‘D-day(디데이·중요한 날)’였다. 부모 도움을 받아 집을 마련한 신혼부부, 한평생 모은 목돈으로 오피스텔을 분양받아 노후 대책을 세운 70대 노인, 첫 출근을 앞두고 10평 남짓한 방을 계약한 사회 초년생까지…. 하지만 이들의 작은 소망은 전·월세 사기극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올해 수원과 안산, 용인, 화성 등 도내 곳곳의 다세대 주택과 오피스텔에서 발생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 됐다. 법의 사각지대인 탓이다. 본보는 피해 사례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이를 예방할 방안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보증금 꼭 되찾을 겁니다.”

회사원 A씨는 다음 달 6일 명도소송을 앞두고 있다. 올해 2월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15만 원의 조건으로, 화성의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임대관리업체를 통해 계약한 것이 화근이었다.

A씨의 이야기는 월세 계약 당시인 8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포에 살고 있던 그는 지역을 옮겨다니는 일 특성 탓에 새로 머물 집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괜찮은 조건의 부동산 매물이 나왔다는 주택임대관리업체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조건을 살펴본 A씨는 만족했다. 경기남부지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함께 인근에 가족이 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오피스텔 계약 2개월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A씨와 월세 계약을 맺은 주택임대관리업체가 오피스텔 주인인 임대인과 월세 15만 원이 아닌 70만 원으로 위탁 계약 맺은 후 보증금을 가로채는 이른바 ‘이중계약’ 사기를 벌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업체는 월세 위탁관리를 맡은 수백 명의 오피스텔 임대인을 속이고,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어 수백억 원의 보증금을 챙겼다. 결국 이 업체의 대표 L씨(39)는 지난 5월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관리이사 B씨(40)와 함께 경찰에 구속됐다. 

A씨의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표 L씨의 구속 직후 임대인이 오피스텔에서 나가달라는 ‘건물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상황이 나빠지자 그는 최근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섰다.

A씨처럼 주택임대관리업체의 이중계약 사기를 당한 사회초년생 C씨도 착잡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오피스텔 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통화한 J 주택임대관리업체와 연락이 마지막이었다. 이사 당일 보증금이 들어오지 않아 수차례 J 업체에 연락을 취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이후 집주인과의 통화에서 서로 ‘이중계약’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C씨는 현재 보증금도 받지 못한 채 기간이 만료돼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집주인의 통보와 함께 명도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C씨는 “대학 졸업 후 직장 인근에 오피스텔을 마련했는데 이중계약 사기를 당하게 됐다”며 “보증금으로 부모님이 보태준 1천만 원의 돈을 받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광주시을)은 해마다 일어나는 세입자 피해와 관련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법적 장치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 의원실은 문제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로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을 대상으로 현 문제의 조치 사항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임대사업자의 과도한 갑질을 포함한 불공정 행위를 제어할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세입자에 대한 전세보증제도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실거래 신고 의무사항에 빠져 있는 현행법의 전·월세 거래 사각지대를 법안 개정을 통해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월세 거래로 피해를 본 임차인을 변호하는 남성진 변호사는 “전·월세 거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실거래 신고 의무가 필요하다”며 “이와 더불어 주택임대관리업에도 강제 조항을 두어 피해자가 양산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위탁 임대사업자에게 주택임대관리업을 등록하도록 강제 법안을 마련해야 하고, 임대사업자에게 세입자가 피해를 보지 않게 보증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제도도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_정민훈기자 사진_경기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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