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꿈에 그린 사할린
여행을 삶의 목적처럼 희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메마른 환경은 점점 현실의 상식 앞에 주저앉았다. 그림을 만들고 언어를 꿰매는 일조차 흥미를 잃었다. 목적 없는 자유처럼 인습의 리얼리즘에 엉켜 수년 동안 갇혀 산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은 반환되지 않고 신산한 삶은 끝이 없는 시작 속에 있다. 치매환자의 무소유 같은 의미 없는 형식은 재현하지 않겠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허무주의라고, 내용 없는 소유의 소비보다는 여행의 다양한 경험에 소비하고 싶다. 이끼 같은 매너리즘은 가라! 2019년 유월, 함민복 시인의 길은 유서요 몸은 붓이라는 비정한 길을 나는 비로소 경건히 나선다. 사할린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지명이 보국대에 끌려간 실경이네 아버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던 고향집 사랑방 이야기를 어렴풋이 당겨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머니는 내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계셨지만 어머니의 눈은 이미 저 세상에, 어머니의 입은 이 세상에 속한지라 어떤 소리도 내게 건너오지 못했다. 다만 무엇인가 말이 되지 못한 안타까운 부르짖음만이 허공처럼 입술을 열고 내 곁에서 달싹이고 있을 뿐.
말이 되지 못한 말-이시영
지난 사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의지였던 어머니를 영원히 작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그 충격을 못 견뎌 앓아누우신지 15년 만이다. 말년에는 의식도 없이 연명하시다가 죽음의 순간 이시영의 시처럼 입을 달싹이며 황급히 부르짖던 안타까운 모습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고아가 되었다. 나는 아직 상제(喪制)의 몸으로 사할린을 간다. 모국, 조국 이런 것들은 나라가 있을 때의 일이다. 나라를 잃은 것은 어머니를, 모국어를 잃은 것과도 같은 슬픈 일임을 사할린 강제징용자들의 생사의 현장에서 느껴 보겠다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비로소 자각한다. 병석에 계셨어도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가 큰 힘이었던 것처럼 식민치하의 조국도 그 자리에 있으므로, 언젠가 돌아갈 것이라는 꿈만으로 그리웠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된 내 나라도 돌아갈 수 없는 애통함은 어떠했을까. 지금쯤 고향은 들판에 심은 모가 뿌리를 내리고 돌담의 앵두가 처녀의 볼처럼 여물어 있을 것이다. 뒤란의 늙은 감나무는 하얀 감꽃을 피우며 벌들을 들끓게 하리라. 밤꽃이 총각냄새를 뿌리고 발정 난 장미가 붉은 몸을 비틀어 대는 유월이다. 흐드러지진 수국, 창포 피는 단오에 창공을 차오르던 그네 생각도 그윽하다. 유월은 항일 6ㆍ10만세운동이 있고 6ㆍ10 민주항쟁 기념일이 있으며, 6ㆍ15남북공동성명기념일과 6ㆍ25한국전쟁기념일이 있는 호국보훈과 민주, 애국 항쟁의 달이다. 유월이 오면 국립현충원에 잠드신 아버님 생각이 고향 산자락의 뻐꾸기 소리처럼 그립다.
탑승객들은 대부분 발음이 새는 듯한 말들을 쏟아내는 러시아계 사람들이다. 더러는 몽골인과 한인들도 보인다. 사할린! 그곳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심상의 landscape일까. 조용히 눈을 감는다. 2시간 50분이 지날 즈음 러시아 항공기는 사할린 공항에 서서히 내린다. 하
에서 바라본 유즈노 사할린스크(사할린의 주도)는 군데군데 바이올렛 붉은 색 지붕의 아파트가 보일 뿐 한적해보였다. 결의 분첩이라는 미스터리의 사진첩과 화태(樺太ㆍ사할린의 일본명, 카라후토)로 불리는 사할린의 다큐멘터리를 오기 전 본적이 있다. 사할린에 강제노역 온 젊은 동포들은 단정한 옷차림에 비정한 표정이었다. 어떤 정의로운 결의였을까. 긴장하고 망연자실했을 그들의 표정을 찾지 못한 것은 또 하나의 숙제로 머릿속을 혼란케 헸다. 일제는 패전과 동시에 그들이 러시아로부터 빼앗아 조선인을 강제노역시킨 남사할린을 자국민만 배에 싣고 빠져나갔다. 수많은 강제 징용자들은 이 허탈감에 일부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고 아우성치던 남은 자들은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드러내기가 불안하여 한해 두 해 안타깝게 주저앉아 살았던 것이다. 힘없는 조국은 귀국선을 띄우지도 못한 채 그들을 버려둔 결과가 되었다.
나는 이번 경기민예총의 해외문화 탐방 팀의 숙소인 가가린 호텔에 짐을 풀었다. 총 26명이 이 호텔을 사용한다. 나는 3인실의 방에 묵게 되었는데 태어나 이렇게 고급스러운 방은 처음이었다. 넓은 응접실과 편안하고 우아한 방, 샤워장이 욕실과 구분되어 있고 침대는 넓고 안락했다. 투명한 원형 샤워실을 이용하는데 갑자기 네 개의 샤워꼭지에서 차가운 물이 일시에 터져 나와 깜짝 놀랐다. 비데가 있는 변기는 한글 표시가 된 국산이었고 TV와 냉장고도 모두 삼성, LG여서 호감이 갔다. 전혀 이질적인 것이 없어 여느 한국의 호텔에 온 듯 편안했다. 게다가 삼면이 내다보이는 전망 또한 환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방 배정이 여의치 않아 우리만 로열 스위트룸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는 부근의 식당에서 현지 식으로 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여행 때 주식처럼 먹었던 샤슬릭이 나왔는데 궁금한 보드카는 개별 주문해서 맛볼 수 있었다. 보드카 한잔이 속을 확 달궈줄 때 굵은 꼬치고기 한 덩어리가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오늘 밤은 아라비아의 왕처럼 기품 있게 잠들 것 같다.
새벽 4시에 잠을 깼는데 밖이 대낮처럼 훤했다. 잠들지 않는 밤. 창밖을 내다보니 자주색 지붕들이 내다보인다.
중국의 붉은색과 러시아의 붉은색은 차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유화 물감의 차이니즈레드는 주색(朱色)이라고도 하는 인류 초기의 빨간색이지만 너무 튀는 느낌이 든다. 조금 과장하면 지시적이고 강한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성조기의 별이나 욱일기,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기의 빨간색은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와 비교하면 러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붉은색은 그다지 강하지 않고 은은하며 바이올렛 적색에 가깝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도 사실은 그다지 붉어 보이지 않았다. 커턴 색을 비롯한 실내 장식에도 이 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클래식하고 고상한 느낌이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너무나도 평화스럽고 조용하다. 어린아이의 숨소리처럼 포근해 보인다. 건물 전체가 빨간 불빛이 새어나오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낮에 가이드가 말한 예쁜 아가씨들을 조심하라는 그 나이트클럽인 듯 보인다. 가는 곳마다 과감하게 노출한 여성의 사진이 보이고 TV 속의 노출 정도가 이곳의 개방 수준을 가늠케 한다. TV 방송은 우리나라의 KBS, MBC, SBS가 거의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한국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가장 인기 있다고 한다. 아마도 상처받은 도시인들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치유의 이상향은 국경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동경에 대한 대리만족 또한 건강한 삶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보편적 마음 산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7시가 되어서야 아침 식사를 한다. 뷔페식인데 된장국도 있고 밥과 김치가 있어 좋았다. 초기엔 러시아인들이 이곳 한인들이 담가 먹는 김치 냄새를 무척 혐오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들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조식을 끝내고 처음 들린 곳은 사할린 한인 문화센터다. 이 건물의 건축양식은 애매하게도 동양적이라고 했지만 신사 느낌이 드는 일본양식이었고 한국적인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이 건물은 1993년에 설립되었고 2004년 일본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일본이 한인문화센터를 설립했다는 것이 의아했으나 일본의 붉은 십자가회원과 건설사 야마시타섹케이 주식회사가 합작한 것으로 보아 인도적인 종교단체와 기업이 일본정부(총영사)의 승인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잠시 마당 오른쪽에 세워진 사할린 한인 이중징용광부추모비 앞에서 함께 묵념하고 그들의 원혼을 달랬다. 비에 새겨진 추모의 글을 함께 간 박설희 문학위원장께서 낭독하는 동안 모두 숙연했다.
이해균 수원민족미술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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