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ㆍ30 북ㆍ미 판문점 회담은 그것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일각의 우려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 스타일이 만들어낸 속빈 강정의 정치쇼로 끝나고 마는가. 판문점 회담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이내에 미ㆍ북 실무회담이 열릴 것 이라고 호언했지만 회담 이후 5주를 맞고 있는 현 시점까지도 실무접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새 잠수함을 공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미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측의 태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거듭 표명하고 트럼프 참모진들도 북한에 대한 당근성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면서 협상동력을 이어 가려는 의도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북한의 핵 동결론과 관련하여 핵 동결이 비핵화 협상의 최종목표가 아니며 ‘핵동결’은 자신들이 비핵화 협상의 입구(beginning)에서 분명히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부분이라고 한 미국무부의 언급은 주목을 끈다. 이번에 미국무가 사용한 ‘핵동결’이 비핵화의 입구라는 표현은 그동안 미국측이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빅딜을 통한 일괄타결’이라는 북핵 해법에 모종의 변화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지금까지 미국과 북한 양측은 일괄타결과 스몰딜을 통한 단계적 해법이라는 큰 견해차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미국의 북핵 해법이 전환되었는지 여부는 앞으로의 협상과정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에게는 촉각이 곤두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향후 트럼프의 정치일정 및 정치적 이해득실로부터 북핵 협상의 성과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핵실험을 하던 사람은 더 이상 없다”며 “나를 만나 행복해 하던 사람은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분명 김정은 위원장에게 신뢰를 표현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5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이 처음엔 없었던 아이디어를 갖고 테이블로 나오기를 희망한다”며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는 발언을 통해 북한이 바라는 ‘체제보장’과 관련하여 논의해보자는 시그날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처럼 어딘지 성과에 집착하는 듯한 미국의 유연한 입장을 간파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북한은 지난 16일 대변인 담화와 조선중앙통신기자 문답을 통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이를 양국의 실무협상 재개와 관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음 달 열릴 예정인 한ㆍ미 연합훈련인 ‘19-2동맹’이 현실화 된다면 조미 실무 협상에 지장을 주게 된다면서 “합동 군사훈련 중지는 미국의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직접 공약하고 판문점 조미 수뇌 상봉 때도 거듭 확인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국의 실무협상은 북ㆍ미 정상들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한미군사훈련이 끝나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년의 대선일정에서 유용한 북한카드를 손에 쥐고 있고자하는 속셈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의 비핵화협상에 속도를 낼 개연성이 크다. 이미 재선 캠프가 꾸려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문제의 획기적인 해결에 대한 정치적 욕구는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2020년에 종료되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성과는 물론 체제의 생존적 차원에서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유엔대북제제 해제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만일 김정은이 핵동결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위협이 사라졌다는 외교적 성과를 맞교환하는 선에서 북핵문제가 봉합된다면 우리에게는 크나큰 위협이 된다. 한ㆍ미 양국 사이에 북핵문제는 실제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같은 핵 운반수단을 제거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하면 미국의 일차적인 핵위협은 사라진다. 하지만 미·북 사이에 이러한 정치적 흥정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큰 안보적 재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거래를 막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한다.
유영옥 국민대교수, 국가보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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