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과 6.25를 전후해 다양한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전세계를 휩쓸고 있던 미국의 재즈 음악이 국내에 소개됐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미군(미8군)이 주둔한 곳에는 재즈 밴드가 활약했고, 수많은 경음악단이 생겼다. 이 시기에 재즈는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한 미군 취향에 맞는 재즈와 경음악 계열을 의미했다. 미8군은 한국 전쟁 때에만 32만 명에 이르며 재즈의 인기도 높았지만 병력 감소와 1960년대 중반 베트남 파병으로 미8군에서의 연주는 급속히 감소했다. 미8군 무대는 한국에 재즈와 색소폰이 직접적으로 연주되는 공간이었다.
다른 종류의 악기는 클래식에 기초해 일부 상류 계층의 향유물로 체계화된 보급과 교수법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색소폰은 명백한 클래식 악기임에도 상당히 퇴색한 이미지로 조명돼 밤무대에서 연주되는 대표적인 악기로 각인돼 버리고 말았다. 1990년대 초반을 시작으로 이후 서울, 경기의 음악대학을 중심으로 클래식 색소폰 전공 학생을 양성했고 이것을 기점으로 음악대학 내에 색소폰 전공자를 한명씩 선발, 색소폰의 새로운 입지가 도래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음악대학 내에 적은 인원수와 검증되지 못한 강사진, 오케스트라 곡의 낮은 보급률, 정보, 교재 부족으로 색소폰 대중화와 홍보, 인지도를 저해하고 있으며 색소폰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교수 또한 적어 학생들은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최근에는 선행 연주자들에 의해 올바른 정보와 문화정착 발전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연주에 필요한 정보 및 색소폰 교재가 체계적이지 못해 연주자들은 수입에 의존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연주자들이 저술한 교재, 전공자가 아닌 색소폰 주자가 주축이 된 색소폰 동호회 등이 색소폰 지도에 문제가 되고 있다.
색소폰은 다른 목관·금관악기 보다 악기의 특성상 소리내기가 쉽다. 연주 시 운지법이 간편하며 전문연주자들을 모방해연주 흉내를 내고 습관처럼 주법이 변해서 고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그러므로 전문성을 지닌 색소폰 교사가 지도 방법을 개발해 처음 악기를 배울 때 체계적인 색소폰의 표현 능력과 포괄적 이해력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종합적인 영역별 연계성을 고려해 지도해야 한다. 음악의 전문성을 지닌 색소폰 문화의 보급과 지도 방법을 개발해 색소폰 문화의 저변확대와 정착을 시켜야 한다.
이승수 오산 송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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