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은 4월 3주 주간학습안내를 작성하고 있었다. 매주 하던 일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광석은 다음 주에 교실에 없기 때문이다. 4월 3주 월요일에 입대하게 된 광석은 자신이 없을 시간에 대한 안내문을 작성하고 있는 자신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안내문이 나가는 4월 2주 금요일까지는 자신이 2학년 4반의 담임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1교시부터 금요일 4교시까지 한 시간씩 채워가면서 광석은 정작 자신의 다음 주 시간은 자신의 손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방송부 이광석 선생님은 지금 바로 방송실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주간학습안내의 가정통신문란에 ‘담임교사의 입대로 인한 담임 교체’라는 문구를 입력하던 광석은 자신을 찾는 방송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송부 업무는 이미 광석의 빈자리를 채울 신규 교사에게 다 인수인계했는데 무슨 일로 자신을 찾을까 생각하며 방송실에 다다르니 방송실 문에 작은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지금 방송부 학생들이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이광석 선생님은 도서관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광석은 포스트잇을 떼며 방송실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송부장 지혜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만 갈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싶어 4층 도서관으로 가보니 도서관에는 ‘체육관으로 가시오’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부 학생들이 방송실 문을 잠그고, 무엇인가를 꾸밀 시간을 벌기 위해 광석을 여기저기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광석은 체육관에서 급식실로, 급식실에서 운동장으로, 영어 교실과 음악실을 지나 과학실까지 방송부 학생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포스트잇을 떼며 학교를 돌아다녔다. 안 그래도 군대에 가면 온종일 걷는다는데 내가 입대 전에 왜 학교를 걸어야 하나, 그냥 방송실에 가서 마스터키로 문을 열어버릴까, 광석이 슬슬 지쳐갈 무렵 보건실에는 마지막으로 보이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광석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방송실에 방송부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내려오세요.’
광석이 방송실 문을 열어보니 어둠으로 가득한 방송실에 하나둘씩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방송실 문을 따라 난 풍선 길의 끝에는 방송부 학생들이 케이크를 들고 광석을 향해 웃고 있었다.
“선생님, 몸 건강히 군대 잘 다녀오세요!”
광석은 방송부 학생들이 내민 케이크의 불을 후- 불어서 끄고, 방송부 학생들과 함께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방송부 활동을 하며 쌓인 추억들을 나누었다. 케이크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 광석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떼어낸 포스트잇을 방송부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얘들아, 그런데 이 포스트잇은 언제 다 붙인 거야? 방송실 꾸밀 시간 마련하려고 그런 거지?”
남은 케이크를 사이좋게 나누던 방송부 학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한참을 웃었고, 웃음이 잦아들 무렵 방송부장 지혜가 광석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군대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마음에 담아 가시라고 했던 거예요.”
광석은 입안 가득한 달달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이 글은 사성진 선생님이 신규 때 군대를 가기 전에 겪었던 일을 소설 형식으로 쓴 원고입니다>
사성진 양주 옥정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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