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오늘 “대한독립 만세” 경기도가 암흑시대를 밝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삼천리 방방곡곡 위대한 함성이 터지고 있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흰 옷 입은 백성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외친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이 함성은 단순히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어떠한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문화로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이상이 담긴 대투쟁이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었다. 봉건왕조 체제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가 시작된 날이다. 고종황제의 죽음은 한 왕조가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5천 년간 이어진 우리 역사에서 봉건체제가 완전히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어린이와 여성의 인권을 인정하고 이들을 존중하는 시대가 새로 열린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혁명은 바로 우리 민초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나아가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지도자 간디의 저항 운동으로 연결되며 세계사를 바꾸는 한 축이 됐다.
올해 우리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게 됐다. 단순히 100년이라고 하는 시간적 관계 때문에 전 국민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 3.1운동을 통해 우리 역사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이를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을 열망하던 민족자결주의의 실천 의지를 어떤 국가보다도 먼저 보여준 것이다. 한 민족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 국민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운동을 한 것은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서구의 다수 제국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외면한 채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3.1운동을 계기로 봉건체제가 아닌 민주공화정을 천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다. 이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3.1운동을 ‘3.1혁명’이라 불러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 3.1 운동의 중심, 경기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3.1운동은 경기도에서 가장 치열하고 깊이 있게 전개됐다. 비록 33인의 민족대표가 서울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종묘 옆의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만세를 외쳤지만 경기도는 항상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었기에 3.1 운동 역시 경기도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1919년 3월 1일은 고종황제의 국장(國葬) 일이었다. 친일파들의 간악한 행위로 고종은 독살을 당했고, 덕수궁에서 국장을 치르기 위한 대여(大轝)가 동대문을 거쳐 양주 금곡(현재의 구리시 금곡동)으로 이동하는 도중 종로거리에 있는 파고다 공원에 많은 인파가 모이게 됐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이다. 이처럼 서울에서의 독립만세 투쟁은 갑작스럽게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경기도 백성들의 독립 투쟁은 조직적이고 헌신적이었다. 역사학계에서는 3.1운동의 3대 성지를 경기도 수원과 안성 그리고 황해도 수안이라고 정리하고 있는데 세 곳 중 두 곳이 경기지역인 것을 보면 당시 경기도의 대일 항쟁이 얼마나 거셌는지 잘 알 수 있다.
항일독립운동가였던 이병헌의 ‘3.1운동 비사(秘史)’에 의하면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시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친 곳은 서울의 파고다 공원과 수원지역이었다. 정조가 건설한 수원 화성의 핵심 장소인 방화수류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바로 경기도에서 벌어진 3.1운동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은 화성시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안성 양성면 만세고개에서의 항쟁은 그 어떤 투쟁 보다도 격렬하고 치열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경기지역 곳곳은 바로 3.1운동의 피맺힌 항거의 공간이었다.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들
인류의 모든 역사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경기도의 3.1운동은 누구에 의해 추진된 것일까?
경기도는 예로부터 나라의 중심이고, 국방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5대 군사 요충지는 압록강 아래의 백마산성, 파주의 임진나루, 고양의 북한산성, 광주의 남한산성, 수원(현재 오산)의 독성산성이었다. 5대 군사요충지의 4곳이 바로 경기지역에 있다. 이는 경기지역이 나라를 지키는 근본의 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 지역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나라를 지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이러한 자부와 책임감이 대대로 전해졌고, 결국 3.1 만세운동으로 격렬하게 나타났다. 양반사대부들과 지식인들의 항거도 대단했지만, 경기도 3.1운동은 민초들의 운동이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기녀 김향화였다. 김향화는 수원의 기녀로서 고종황제의 죽음 이후 가무(歌舞)를 끊은 뒤 상복을 입고 머리에 나무 비녀를 꽂았다. 그리고 매주 1회 서울로 동료 기녀들을 데리고 올라가 덕수궁에서 곡(哭)을 하고 내려왔다. 그녀는 3월 1일 이후 지속적인 만세투쟁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도 독립운동의 의지를 꺽지 않아 유관순 열사와 함께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됐다.
이처럼 기녀들까지 참여한 경기도 독립만세 투쟁은 역사 속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3.1운동의 역사적 인물들은 대부분 민족대표 33이나 혹은 48인을 중심으로 하는 명망가들이다. 그러나 경기지역의 3.1운동을 이끌어간 이들의 상당수는 김향화 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하던 시절 여성에다 그것도 천민으로 취급받던 기녀가 3.1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중들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화성 지역의 차희식, 백낙열, 공칠보, 파주의 임명애 등은 평범한 백성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인물들이 민족의 자주와 인간의 평등을 요구하는 항쟁의 선두에 섰다. 물론 경기지역 3.1운동에 명문가 출신의 안재홍 지사 같은 사람이 기여한 것도 부인할 수 없으나, 경기도 평민들의 항쟁은 3.1운동사에서 그 가치를 더욱 높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할 것인가?
올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선조들의 얼을 기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100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100년의 시작을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100년 전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헌법에 민주공화정을 천명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등 약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권력과 금력이 법과 정의를 뛰어넘어 불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외쳤듯 남과 북의 국민들이 더 이상 이념대결로 서로를 배척하지 말고 하나가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문화로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백범은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 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백범이 꿈꾸던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 만들기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 만들기를 위해 2019년 경기일보의 특별기획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를 만나다’가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이 연재를 통해 경기도의 각 지역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주와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투쟁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경기인들이 삶과 자연스레 비교하며 자랑스런 경기의 역사를 보여주도록 노력 할 것이다.
이 연재를 위해 경기도와 경기일보, 현장을 답사하고 역사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해 줄 전문가들을 대신해 대표 필자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제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반드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준혁(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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