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 눈에는 뭐가 다른지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의 눈은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비단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같은 구조하에 있는 합창단도 마찬가지다.
사실 세종문화회관 법인화 이후 전국의 많은 극장들이 법인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찬반 논란은 아직도 계속이지만 고향시향의 예술단체 계약제는 전국에서 첫 사례다. 성공 여하에 따라서는 파장을 가져올지 모른다.
눈 만 뜨면 외국 오케스트라가 전국권을 시장화하고 있는 마당에 기존 공무원 시스템 하에 있는 우리 오케스트라들이 능력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양질의 향수권을 요구하는 시민과 시민 세금의 효율성을 걱정해해야 하는 시의 입장에선 이래저래 고민이 깊다.
지난 14일 고양아람누리 하이든 극장에서의 창단 콘서트는 때문에 여러 비평가들도 관심을 보였다. 오페라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은 지휘자 카를로 빨레스키의 첫 선은 합격점을 넘어 관객의 호응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암보를 통해 바그너의 발퀴레 서곡과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깊은 감동을 안겨 오케스트라 협연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례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창단 연주회의 프로그램이다. 흔히 청중을 위한 프로그램은 눈높이에 맞추는 것인데 정면 승부수를 띄웠다는 점이다.
쉽지 않은 레퍼토리, 그것도 난곡(難曲에 해당하는 한 시간이 넘는 브루크너(제7번 교향곡)로 시민을 만난 것이다. 예상을 넘는 도전이다. 사실 음악이 청중을 설득하지 못하면 1부 공연 후 휴식 시간에 청중들은 빠져나간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긴밀한 호흡과 섬세한 악상처리, 제네바 콩쿠르 우승의 젊은 유망주를 투입해 명연을 보인 것은 좋지만 후반의 브루크너는 강한 집중력을 갖지 못한다면 실패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은 음악다운 음악을 들었다는 자긍심이 묻어났다.
그저 쉽고 편안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청중들이 알아차릴 만큼 성숙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아니 청중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왜 이들은 낯선 무대에서, 그것도 이처럼 강공을 택한 것일까? 여기에 고양시향의 앞으로의 목표를 엿볼 수 있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최선의 최선을 다한 무대를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이런 변화는 분명 도시 문화를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시민의 자존심과 우수 프로그램을 흡입하는 관객들이 향후 ‘감상 근육’을 튼튼하게 키워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서운 힘이요 저력이다. 변화가 변화를 부른다고 하지 않던가. 인구 백만의 고양시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기 위해 무한 도전의 프로의식을 고양시향이 보인 것이다. 때문에 창단 연주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노조와 공무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단원이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답할 것인가가 숨은 그림찾기처럼 들어 있다. 이게 개혁이고 혁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비록 티켓 가격은 저렴했지만 매진을 했다. 앙코르를 외친 한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오늘 음악회 너무 감동이야! 다음엔 친구들 데려와야겠어~.”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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