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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칼럼] 그렇게 죄송할 짓을 왜 했나
오피니언 이연섭 칼럼

[이연섭 칼럼] 그렇게 죄송할 짓을 왜 했나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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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家 세모녀 줄소환 ‘갑의 추락’
포토라인서 똑같이 ‘죄송’ ‘죄송’
진정 죄송하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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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 번째 여자도 포토라인에 섰다. 그녀의 두 딸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딸들과 똑같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28일 오전 10시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다. 이씨는 자택에서 일하는 수행비서와 가정부, 한진그룹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갑질’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직원 10여 명에게 폭언을 퍼붓고 손찌검을 한 의혹이 제기돼 경찰에 소환된 것이다.

이씨는 3분가량 포토라인에 섰다. ‘직원들을 왜 욕하고 폭행했냐’,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실이 있냐’, ‘가위나 화분 던진 것 맞냐’는 기자들의 여러 차례 질문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7번 반복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대답도 3번 했다.

 

이씨는 15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29일 0시45분께 귀가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이씨에게 ‘상습폭행을 인정하는가’, ‘경비원에게 화분을 던졌나’, ‘임직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등의 취재진 질문에 그녀는 또 “죄송합니다”라고 3차례 말했다. 이씨는 경찰청에 들고 나며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를 10번 되풀이했다.

 

5월 한 달간 한진가(家) 세 모녀가 경찰에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지난 1일 ‘물벼락 갑질’ 의혹으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강서경찰서에 출석했다. ‘유리컵 던진 것을 인정하느냐’, ‘음료 뿌린 것 맞느냐’, ‘대한항공 총수 일가 사퇴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잇따른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머리를 숙였다. ‘죄송하다’를 6번 반복했다.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울먹임의 의미가 반성인지, 억울함인지, 창피함인지….

 

이 모습은 4년 전 언니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모습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쳤다. 2014년 12월12일 조 전 부사장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김포공항 내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실에 출두했고, 이날 취재진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매는 모두 검은색 정장차림에 참담한 표정이었다. 취재진의 여러 질문에 “조사 과정에서 성실하게 답하겠다”고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출발하려는 여객기 내에서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사무장과 승무원을 폭행하고 항공기 항로를 변경해 정상 운항을 방해한 혐의로 2015년 1월에 구속기소 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었다. 그녀가 이번엔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다시 경찰에 출두했다. ‘땅콩회항’ 사건 뒤 3년 5개월 만에, 24일 다시 포토라인에 선 그녀는 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의 세 모녀가 수사기관 포토라인에 서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모습이라니 꼴불견이다. ‘갑의 추락’이다. 그렇게 죄송할 짓을 왜 했나 싶다. 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는 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죄송하다는 중얼거림이 입만 뻥긋거리는 건 아닌가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 피해자들에게 사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이 그렇고, 조사과정서 여러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고 하니 더 그렇다. 죄송하다는 말은 그냥 의례적으로 한 사과 발언 같아 보인다.

 

그들이 진정 죄송한 마음이라면,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가면을 쓴 채 매주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들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온 맘을 다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룹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잘못된 부분은 상응한 벌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입으로만 10번, 100번 죄송하다고 떠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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