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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칼럼] 앞을 못 봐도 행복한 엄마와 현정이
오피니언 박옥수 칼럼

[박옥수 칼럼] 앞을 못 봐도 행복한 엄마와 현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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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아, 너는 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입을 다무니. 우리는 널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뭐라고요? 도와준다고요? 저 지금 자살하고 싶은데 도와주실래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며 힘들어하던 현정이는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바꿔볼 기회라 생각하고 아프리카를 택해 해외봉사를 왔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자신을 발견한 것뿐이었다.

 

현정이의 엄마는 20대 초반 앓은 뇌경색으로 시력을 잃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하던 현정이의 엄마는 마음을 고쳐먹고 학교에 들어가 점자도 배우고, 마사지도 배우면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가지게 되었다.

 

현정이가 태어날 때쯤, 불행하게도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한다. 현정이 엄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처지에 혼자서 출산을 해야 했다. 그리고 너무 예쁜 딸을 낳았다. 엄마가 된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앞 못 보는 사람이 갓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형편이 닥쳐왔다. 가까운 친척을 찾아가 애원하며 돈을 주고 아이를 부탁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눈먼 엄마나 철없는 어린 딸을 좋아할 리 없었다. 결국 현정이는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자랐다.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10살이 되고, 15살이 되었을 때, 현정이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능력도 없으면서 무책임하게 자기를 낳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정이는 엄마와 원수 사이가 되었다.

“엄마는 키울 자신도 없으면서 왜 나를 낳았어? 차라리 죽여버리지.” “엄마가 앞을 못 보는 것 때문에 왜 내가 고생을 해야 해?”

 

현정이는 매일 술도 마셨다. 성격이 거칠어져 갔다. 그러다 대학에서 국제청소년연합(IYF)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해외봉사를 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삐뚠 성격 때문에 문제가 됐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싸는데 IYF 탄자니아 지부장 사모님과 맞닥뜨리게 됐다. 현정이는 사모님 앞에서 엄마에 대한 불만, 자기 마음의 아픔을 토해냈다.

 

“현정아, 너의 엄마는 너 같은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었어. 세상이 흑암뿐이었지. 그때 네가 태어난 거야. 너는 엄마의 기쁨이요. 빛이요. 전부였어. 그런 네가 엄마에게 냉혹한 말을 했을 때,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 봤니?”

 

현정이는 깜짝 놀랐다. ‘나는 왜 엄마 마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엄마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한국에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뭘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현정이는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요.”

 

이 한마디에 수화기 너머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멀리 탄자니아에 있는 현정이도 같이 울었다. 엄마의 마음과 현정이의 마음이 처음으로 연결되었다.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현정이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니 미워할 수 없다. 둘은 너무나 가까운 사이가 됐다. 엄마가 앞을 못 봐도 두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녀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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