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형님.”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형님, 말씀하세요.”
“내가 혼자라면 몰라도 나이 많으신 어머니도 있고 네 형수도 있고, 무엇보다 네 조카가 셋이나 있다. 네가 우리와 함께 산다면 결국 우리 가족 모두 죽는다. 그래서 뼈가 녹는 아픔을 뒤로 하고, 하기 싫은 말이지만 지금 안 할 수가 없다. 네가 우리 집에서 나가거라.”
결핵은 무서운 병이었다. 결핵 환자의 입에서 나온 균이 공기 중을 날아다녀 가족들이 전염되며, 특히 어린아이들이 쉽게 전염되었다.
상철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공만 있으면 되고, 하루 종일 혼자 공을 차도 좋았다. 시간이 흘러 상철이는 어느 대학의 축구부에 들어갔다. 국가대표가 되어 월드컵에 나가서 골네트가 출렁이는 골을 넣어 자신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클로즈업되어 나오는 꿈을 꾸며 열심히 운동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낫겠지…’ 했는데 더 심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폐결핵이었다. 가난해서 잘 먹지 못한 데에다 몸을 돌보지 않아 병에 걸렸던 것이다.
요즘은 약이 좋아서 결핵이 그다지 무서운 병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형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상철이는 바로 일어나 집을 나왔다. 날씨는 춥고 가진 돈도 없었다. ‘무엇을 먹지? 어디서 자지?’ 난감했다. ‘이 겨울에 병든 몸으로 배고픔을 겪다가 얼어 죽겠구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루 종일 굶고, 잘 곳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다행히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작은 집이 있었다. 상여를 넣어두는 곳이었다. 거기서 자고 아침이 되면 냇가에 가서 세수를 했다.
하루는 세수하고 있는데 “상철이 총각!” 하고 누가 불렀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이웃 아주머니였다.
“총각, 나 따라갈래?”
“어디 가시는데요?”
“교회 가는 길이야.”
아무 말없이 아주머니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4㎞ 남짓 걸어 다른 마을에 있는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이 아니고, 큰 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일곱, 여덟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목사님은 계시지 않고 한 부인이 예배를 인도했다.
상철이는 추운 데에서 떨며 지내다가 따뜻한 방에 들어가니까 노곤해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누가 깨워서 보니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자기가 결핵 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밥을 주어서 한없이 고마웠다. 밥을 먹고 나자 예배를 인도한 아주머니가 성경을 펴서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저녁때가 되어 다시 식사를 했다. 가족도 병든 자신을 버렸는데, 그처럼 베풀어주는 사랑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상철이는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음에 평안과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겨울에 얼어 죽겠다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이 많은 여자 전도사의 정성으로 상철이의 마음에 믿음도 더해 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상철이는 그 사이에 병이 다 나아서 몸이 정상이 되었다. 얼마 뒤 상철이는 신학교에 들어갔고, 목사가 되었다. 자신을 품어준 나이 많은 여자 전도사님에게서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지금도 목회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 여자 전도사님은 하나님의 품으로 갔고, 상철 목사를 통해서 그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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