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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 칼럼] 반일(反日)과 극일(克日), 우리의 선택은?
오피니언 김영래 칼럼

[김영래 칼럼] 반일(反日)과 극일(克日),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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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지구촌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게 접하고 있는 이웃이다. 일본령인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리적 근접성에 비하여 한일 양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 간극은 저 멀리 북극점에 있는 그린란드보다도 더욱 얼어붙고 또한 골이 깊다. 따라서 한일관계 설정은 가깝지만 먼 나라의 희비곡선 하에서 항상 논쟁이 되고 있다.

 

특히 8월이 되면 양국 국민들은 한일관계에 대하여 고심하게 된다. 언론은 물론 정치인들도 8월이 되면 한일관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돌출적인 망언이 보도되면 한국인들의 응어리진 감정을 폭발시켜 다소 해빙 무드가 조성되던 한일관계는 또 다시 얼어붙게 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전개된다.

 

오늘은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과 일본이 합병조약을 체결한지 107년이 되는 치욕스러운 날이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1904년 한일의정서를 통해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이어 1905년 11월17일을사늑약을 강요하여 외교권을 박탈, 보호국을 만들었으며 또한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이 조약은 을사5적 이완용 등이 서명하였다.

 

한일병합조약으로 통치권 박탈

1910년 8월22일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은 총 8조로 구성되었으며, 일체 통치권을 일본국 황제에게 양여한 것이다. 당일 오후 1시 창덕궁에서 순종이 참가한 형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쳐 전권위원으로 임명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 사이에 병합조약이 조인됨으로써 한국은 암흑의 일제시대 35년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조약은 공식적으로 29일에 발표되어 경술국치일은 29일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통치권을 장악한 일제가 행한 한민족에 대한 만행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치욕의 35년을 고통 속에 견디었다. 수많은 독립지사와 일제가 저지른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젊은 청년들이 희생되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개명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뿐만 아니다. 한반도는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에 전진기지 역할을 했고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위안부로 일본군에 의하여 인권이 유린되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그럼에도 일부 일본 정치인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철도 부설 등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망언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설정 필요

일제로 해방된 지 72년이 지난 오늘,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 질서의 안정은 물론 양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지금과 같은 냉각된 갈등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양국은 경제적·안보적으로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미래지향적 관계를 설정해야 된다.

 

우선 일본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진솔하게 사과해야 된다.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개선될 수 있다. 우리도 일본에 관한 문제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반일(反日), 혐오하는 혐일(嫌日)보다는 우리의 실력을 향상시켜 일본을 극복하는 극일(克日)의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정치인들이 일본 수상 아베와 같이 한일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한일 양국 국민은 경계해야 된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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