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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를 빛낸 인물] 남정각(1897~1967)
오피니언 경기도를 빛낸 인물

[경기도를 빛낸 인물] 남정각(1897~1967)

조국광복·민족해방 헌신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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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영득, 호는 오산(午山).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등지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했고, 1920년 3월 북경(北京)으로 망명, 중국청년회 어학과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 장춘(長春)·톈진(天津)·상해 등지를 순력했다.

 

장춘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난 뒤 1922년 6월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3년 의열단에서는 국내의 일제기관 파괴와 요인을 암살하고자, 서울에 있던 김한(金翰)과 김원봉 사이를 오가면서 폭탄의 수입준비를 진행하던 중 김한이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폭탄을 구하지 못했다.

 

그해 3월1일 톈진으로 가 김원봉으로부터 폭탄반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비용을 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듣고, 실행비용을 국내에서 보충하기 위해서 동지 권정필(權正弼)·유시태(柳時泰)·유병하(柳秉夏)와 협의한 뒤 권총을 휴대, 2월21일부터 3회에 걸쳐 서울 내자동 이인희(李麟熙) 집에 찾아갔다가 잠복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8년형을 받고 복역했다. 1929년 출감하자, 다시 톈진으로 망명하여 톈진교민회를 조직,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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