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박스만 뜯어도 “훼손” 환불 거부
꼼수 영업에 피해 느는데 정부는 수수방관
소비자의 구매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 유독 통신분야에서 모호한 법 해석으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정부에 사는 C씨(32)는 최근 100만 원대 최신 휴대전화를 할부로 사들였다 낭패를 봤다. 판매 대리점 직원이 구매하면 보조지원금 추가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개통 이후 직원이 이를 지키지 않고 나 몰라라 해서다. 그는 며칠 뒤 환불을 요청했지만 ‘안된다’는 대답만 받았다. 이미 포장을 뜯었고 통화상 큰 결함이 있을 때만 증명해야 환불이 가능하다는 게 직원의 답변이었다.
더구나 C씨는 현행법상 할부 구매 이후 7일 이내 계약 철회가 가능하다고 있다는 근거를 확인하고 통신사와 대리점 등에 권리를 주장했으나 업체들은 단호했다. 현행법상 ‘멸실’이나 ‘훼손’ 등 그 가치를 모두 잃지 않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철회할 수 있다고 명시됐는데도 통신사 등은 자체적으로 박스 개봉이 멸실에 준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C씨는 “어떻게 속아서 산 새 휴대전화가 훼손과 같다고 해석하는지 모르겠다”며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설명과 경고 등에 대한 사전 고지 없이 일단 팔고 보자 식의 ‘막가파’ 판매에 된통 당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처럼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규제를 피해 꼼수로 영업하는 대리점들이 활개치며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정부가 수수방관으로 일관,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은 개통 이후 14일 내 ‘단순 변심’만으로도 제품의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한 것과 대조된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에어컨 등 다른 가전제품은 구매 직후 단순 변심에 따른 환불 등이 가능한데도 유독 통신분야에서만 안된다고 고집한다”며 “소비자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 관계자는 “해당 법령 문구가 모호, 해당 민원이 숱하게 들어온다. 통신사와 소비자 간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으로선 민사문제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에 대한 별다른 논의는 없다”고 밝혔다.
의정부=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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