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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 칼럼] 정치선진화의 갈림길에 선 한국
오피니언 김영래 칼럼

[김영래 칼럼] 정치선진화의 갈림길에 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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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봄은 오고 있으나, 한국정치에 있어 봄은 오지 않고 있다. 봄이 오기는커녕 건너 뛰어 오히려 아스팔트에 불볕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폭염의 여름이 성큼 닥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기후변화를 지구온난화에만 탓하기에는 탄핵정국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큰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다.

 

지난 1일 삼일절 98주년을 맞은 광화문 광장은 태극기 물결로 열기가 넘쳐났다. 8·15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치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 물결이 그렇게 많이 펄럭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세계 정치사에도 광장에 수백만명의 시민이 운집하여 상호 갈등 세력이 무력충돌 없이 국기를 흔들며 평화적 시위를 한 것은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장면일 것이다.

 

갈등의 상징이 된 촛불과 태극기

그러나 광장에 모인 시민이 흔든 수백만개의 태극기는 98년 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한 ‘화합과 통합’의 태극기가 아니고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나타내는 상징의 표상이 되었다. 참가자들이 외치는 내용도 달랐다. 촛불집회는 ‘박근혜 퇴진, 탄핵 인용’을, 태극기 집회는 ‘탄핵 기각, 박근혜 대통령 무죄‘를 외쳤다.

과연 이런 광경을 이승에 계신 독립운동 선열들이 보았다면, 오늘의 후손들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하는 생각을 하면 우선 죄송스러움 뿐이다.

지난 해 1월 다보스포럼 이후 세계의 주요 화두는 제4차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AI) 등으로 상징되는 제4차산업혁명에 대비하여 각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과 혁신을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정치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정치 역시 제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제4의 물결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제1의 물결은 이승만 정부에 의한 신생국가 건설이며, 제2의 물결은 박정희 정부에 의한 산업화시대이다. 또한 제3의 물결은 김영삼 정부 이후 민주화시대이며, 현재 우리는 제4의 물결시대를 맞고 있다.

 

제4의 물결시대는 정치선진화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 해외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변한 한국은 G20정상회의도 개최했을 정도의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탄핵정국에서 보여준 한국정치의 단면을 보면 정치선진화는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헌재 결정 수용은 법치주의 핵심

정치선진화의 요체는 법치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과정의 정치이며, 이는 법치에 의하여 질서가 유지될 때 가능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정치행위라도 과정 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면 그 결과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국가에 있어 법은 공동체 구성원의 토론과 합의에 의하여 이뤄진 것이 때문에 이는 당연히 준수되어야 한다.

 

헌재의 탄핵소추 인용 여부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지금까지 촛불과 태극기 집회 참여자 모두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였으며,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헌재의 결정은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지극히 잘못된 인식이다. 더구나 일부 대선 주자들이 이런 견해에 동조 또는 선동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소추에 대한 최종심판을 정치권과 국민들은 겸허하게 수용해야 된다. 특히 유력 대선 주자들과 각 정당의 대표들은 이를 조건없이 수용, 국민통합에 앞장서겠다는 명시적 선언을 해야 될 것이다.

 

제4의 물결시대를 맞이한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룩, 이제 정치선진화란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 전개되는 정치권과 국민들의 행태는 한국정치의 선진화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동안 수백만이 참여한 촛불과 태극기 집회가 평화적으로 개최되어 세계가 놀란 시위문화를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에도 보여주어 다시 한번 한국민의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과시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 아닌지.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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