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개헌하라, 국민 뜻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기자페이지
국민은 새로운 지도자를 원한다

제목 없음-1 사본.jpg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즉시 개헌이 대한민국 민심이다.

 

탐욕의 호헌(護憲)은 민심의 개헌(改憲) 앞에 무너졌다.
국민 72%가 ‘개헌해야 한다’고 답했다. 20.4%는 반대한다고 했다. 국민이 개헌을 원하고 있다.

 

현행 헌법의 문제점으로는 50.1%가 ‘제왕적 권력’을 꼽았다. ‘책임정치 미흡’이 26.8%, ‘구시대적 내용’이 23.0%였다. 무소불위 대통령 권력에 신물을 내고 있음이다.

 

개헌의 시기는 60.5%가 ‘다음 대선 이전에 개헌해야 한다’고 답했다. 새로운 제도에 의한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고 있음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말 국민 724명에게 물은 결과다. 

 

87년 헌법은 이제 명(命)을 다했다. 광주 학살 정권을 단죄했던 헌법이다. 오랜 군부 독재를 종식했던 헌법이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에 분노했던 헌법이다. 100만 민중이 6월 항쟁으로 이룩했던 헌법이다. 

 

그 후 30년이다. 이제 학살 정권도, 독재 정권도, 고문 정권도 없다. 시대가 달라졌고 가치가 달라졌다. 민초(民草)의 저항으로 이룩한 위대한 역사 속 유물로 정리해야 할 때다. 피와 목숨을 바쳤던 개발 시대의 유적으로 남겨야 할 때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1월5일 피고인 신분으로출 석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1월5일 피고인 신분으로출 석하고 있다.
그 30년 대통령제가 남긴 오욕의 찌꺼기들이 널려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본인이 감옥에 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이 감옥에 갔다. 김대중 대통령도 두 아들이 감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친형이 감옥에 갔다.

 

혐의는 다 다르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라는 점은 같다. 그들이 기생했던 권력이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같다. 이런 권력형 비리가 87년 헌법 30년에서 5년마다 반복됐다. ‘대통령=부패’라는 참담한 데자뷔다. 

급기야 최순실이라는 권력의 괴물이 출몰했다. 인사 개입으로 국가 조직을 주물렀다. 연설문 대필로 국가의 입으로 행세했다. 국가대표 기업의 돈을 개인의 사금고로 삼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괴물 앞에 선 아바타였다. 추천한 대로 인사했고, 써주는 대로 읽었고, 시키는 대로 흥정했다. 한 나라의 권력이 이 지경이 될 수 있음에 모두가 경악하고 있다. 30년 제왕적 대통령제가 부패로 치닫다가 결국 만들어낸 종단(終端)의 모습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1월5일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1월5일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30년 전 6월 항쟁은 100만 국민의 항거였다. 폭력 정권을 축출했고, 독재 정권을 타도했다. 

 

2016년 12월 항쟁은 1,000만 촛불의 항거다. 비리 측근을 감옥에 보냈고, 무능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사망을 선고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대통령제를 뜯어고치라고 명령하고 있다. 30%의 정당 지지도, 30%의 정치인 지지도를 뛰어넘는 72%의 개헌 지지도가 그것이다. 어디에도 이 ‘72%’ 민심을 반박할 수치는 없다.

 

국회가 특위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29일 본회의를 열어 개헌특별위원회 설치안을 통과시켰다. 그간 국회의장 직속의 개헌자문위원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개헌 특위가 설치된 것은 1987년 이후 30년 만이다. 

 

제목 없음-4 사본.JPG
국회가 개헌의 중심에 선 것도 고무적이다. 1948년 제헌 이래 9번의 개헌이 있었다. 이 가운데 국회가 주도권을 행사한 것은 3차 개헌(1920년·2공화국)과 9차 개헌(1987년·6공화국) 두 번뿐이다. 나머지 7번의 개헌은 대통령이 했다. 

 

정치권을 덮은 다수의 목소리도 개헌이다. 국회의장은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새누리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모두 개헌을 말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 역시 대체로 개헌에 찬성한다. 야권 후보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이 한목소리를 낸다. 손학규 전 대표는 일찌감치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시대’를 화두로 던져놨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개헌을 통한 정치제도 개혁을 외쳤다.

 

민심이 이렇다. 이유를 대선 안 된다. 2017년 한국 정치의 1호 과제는 개헌이다. 그 시기는 대선(大選) 이전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면 안 된다.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그간 개헌자문위 차원에서 만들었던 개헌안이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개헌 습작(習作)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중에 선택하고, 모여서 다듬고, 국민 투표에 부쳐 의견을 물으면 끝나는 일이다.

 

더 이상 국민은 속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마다 당선되면 개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하루의 임기도 손해 보려 하지 않았다. 절대 권력이 서산에 기울 때 가서야 개헌을 말했다. 지금의 이들이 과거의 그들과 다를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거짓말이다. 대선 이후에 개헌하겠다는 약속은 거짓말이다. 대통령 임기 단축의 약속도 미덥지 않다. 우리 정치의 경험칙(經驗則)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30년 전, 탐욕의 호헌(護憲)은 민심의 개헌(改憲) 앞에 무참히 무너졌다. 지금의 민심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 제도로 등장하는 권력을 더는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정치가 해야 할 답은 간단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타파를 약속해야 한다. 즉시 개헌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 명령을 받는 정치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고, 이 명령을 받지 않는 정치는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글_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