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탕 임금이 걸(桀)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紂)를 징벌한 것을 예로 들며 신하가 임금을 시해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대답했다. 임금답지 않은 임금은 필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은 필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최순실씨의 국정논단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경악해하고 있다.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르며 국가기밀인 대북관계와 장관의 인사까지 관여한 사실이 하나둘 나올 때마다 국민들은 자신의 옷이 벗겨져 벌거숭이가 되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부끄러워진다.
청와대 문건유출사건으로 구속된 박관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우리나라 권력 1위가 최순실, 2위가 정윤회이고 박대통령이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때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참 싱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국민들은 권력 1위 최씨를 ‘요괴’라 부르며 요괴에 홀려 장단을 맞춘 박대통령 행적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박대통령이 서둘러 발표한 사과에는 국민들의 기대가 들어있지 않다. 앞뒤 내용도 없이 청와대 비서진이 갖춰지기 전 최씨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달리 해석하면 어려운 시기에 자문해 준 최씨에게 국민들이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사과문도 최씨가 자문해 준 것이라는 말들이 돌고 있다.
JTBC가 입수한 2014년까지 자문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최씨가 국정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최씨 주변인들을 통해 쏟아지면서 대통령의 사과도 초라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커졌다.
애초부터 박대통령은 군주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공(公)사(私)를 구분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국민들은 그동안 의혹이 불거지거나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인식과 발표를 할 때도 대통령으로서 공적 고민의 결과라고 이해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 공적 이해라는 말은 허망한 기대가 됐다.
어릴 적부터 청와대에 생활하면서 청와대 자체를 私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유학의 전통을 지닌 조선은 임금의 사를 없애 공에 이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그 지루한 경연을 했다. 공주의 집을 지어주는 임금에게 신하들은 사적인 일에 국비를 사용한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기 싫었던 세조, 연산군은 경연을 폐지했고 역사는 그들을 폭군이라 일컸는다.
박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학생들이 오늘 시국선언문을 통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사과문’이라며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금기시되는 단어인 하야와 탄핵이라는 단어가 대학가를 비롯한 시민단체를 통해 터져나오고 있다.
어쩌면 이 같은 요구와 주장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단어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때와는 전혀 다르다. 현실적으로 탄핵과 하야가 가능하냐의 문제를 떠나 그 주장이 국민들 사이에 과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진실이다. 기자들이 발품을 팔아 나오는 보도가 나올때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관심을 갖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이 관심은 밝히면 좋고 밝혀지지 않으면 끝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들의 권리다. 문건을 전달한 청와대의 비선이 누구인지 최씨의 관여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됐는지, 최씨가 그동안 누린 특권이 무엇이지 모두를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박대통령 뿐이다.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은 이후에 국민들이 판단하면 된다. 국민들은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그 선택은 이제 박대통령이 해야 한다.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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