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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논단] 국제표준어 ‘홧병’
오피니언 인천논단

[인천논단] 국제표준어 ‘홧병’

1996년 미국 정신과 협회는 ‘Hwabyeong’ 또는 ‘Hwabyung’이라는 이름의 질환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정식 등록했다. 홧병(화병)이 한국어 유래의 국제표준어가 된 것이다. 외국이라고 스트레스가 없지도 않은데 왜 한국 특유의 스트레스성 장애가 문화적인 특징에 기반해 그 특수성을 인정받게 되었을까?

 

우선 홧병의 정의를 보면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억제된 상태가 지속, 반복되면서 정신적인 장애가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감정은 분노(화)만이 아니라 기쁨, 생각, 근심, 슬픔, 두려움, 놀람까지 전반적인 사람의 감정을 모두 포함한다. 즉 격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것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눌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홧병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왜 그러한 감정이 억눌리게 되는 것이 한국 특유의 상황인가가 궁금해진다. 

이러한 특성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의 예를 꼽는다. 전통적인 결혼 풍습에서 결혼을 한 여자는 남자의 집에서 여러 역할을 떠맡으며 시부모와 남편에게 종속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문화적, 경제적 종속으로 인해 정당하지 않은 대접을 받더라도 쉽게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었고 다른 여러 감정들도 속으로 삭여야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또한 현재와 달리 친정이나 친구 등 본인의 고충을 공감하고 위로해 줄 사람들과의 교류도 극히 제한적인 환경에서 억눌린 감정은 상당히 오랜 기간 축적이 되었고 그것이 스트레스성 장애를 만들어 각종 신체증상까지 보이게 되는 것이다. 감정은 일종의 에너지이다.

어떠한 감정이든 에너지가 생기고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흘려보내야 하는데 자의로든 타의로든 감정을 억누르게 되고 참는 것으로만 해결을 하게 되면 응축된 에너지는 결국 폭발하면서 문제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홧병이 국제표준어가 된지 20년이 지났고 한국의 여러 문화적인 특징도 그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며 전통적인 시집살이가 거의 사라진 현대에도 ‘한국형’ 홧병은 유효하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말하는 ‘표정 없는 한국인’이란 지적처럼 우리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데 서투르다. 또한 사회적으로 갑을관계의 강화 등으로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인 유대에 취약한 남성들, 중장년의 남성들에게서 스트레스성 질환의 증가가 많은 것도 이러한 면을 보여준다.

 

이런 억눌린 감정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감과 위로다. 프리허그가 유행하기도 했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위로의 표어가 되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과 위로의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홧병이라는 단어를 그저 한국의 과거에 묶어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의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가 먼저 공감해주고 위로를 건넴으로 인해 누군가도 나의 마음을 열어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줄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그리고 분노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기에 붙잡아두고 눌러 앉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 감정의 에너지가 쌓이지 않을 것이다.

 

이재수 다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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