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쿠니 사격장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매향리는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매향리의 농섬 일대는 1951년부터 2005년까지 54년간 미 공군 사격훈련장으로 쓰였다. 매향리의 옛 지명인 고온리의 영어 표기(KOONI)를 미군들이 쿠니로 발음하던 것이 그대로 굳어 ‘쿠니 사격장’으로 불렸다.

 

주민들에 따르면 농섬은 생명의 땅이었다. 전쟁 이전 농섬은 소나무 등이 우거지고 먹이가 풍부한 갯벌을 품은 무인도였다. 먹을 게 없던 시절, 철새들이 낳은 알을 수거해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 분단의 비극은 평화롭던 매향리를 죽음의 땅으로 내몰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미 공군은 매향리 농섬을 해상표적으로 삼아 폭격 및 사격훈련을 시작했다. 1954년 미군 주둔 이후엔 연간 250일, 하루 평균 11시간, 15~30분 간격으로 포탄을 투하했다. 미군은 농섬과 육지를 포함해 97만여㎡를 사격장으로 활용했다. 섬은 찢기고 부서져 현재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

 

주민들은 전투기 오폭과 소음 등에 시달려야 했다. 자료에 따르면 8개월 임신부를 포함해 불발탄 등의 사고로 13명이 사망했고 22명이 손목 절단 등의 중상을 입었다. 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도 34명이나 된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대책위를 꾸려 1988년부터 사격장 반대와 소송에 나섰고, 오랜 싸움 끝에 2005년 8월 사격장이 폐쇄됐다.

 

농섬이 반세기 넘게 미 공군 사격장으로 쓰인 것은 군사 전략적으로 최적의 훈련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불과 1km 근처에 민가가 있어 조종사들이 긴장감을 갖고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있어 ‘폭격하기 좋은’ 사격장이었던 것이다.

 

쿠니 사격장이 최근 ‘경기도 제1호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됐다. 경기도는 “6·25 당시의 생활상과 1950년대 군사기지 건축 방법, 건축 재료 및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 역사적·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쿠니 사격장의 대지 2만3천852㎡와 건물 6개 동이 해당됐다. 6개 건물은 미군이 1954년쯤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병소, 장교막사, 숙소·식당, 카페·체력단련실, 헬륨저장소, 사격장 통제실 등이다.

 

화성시는 매향리 사격장 일대 57만㎡를 평화생태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여기엔 역사박물관·조각공원·생태습지·리틀 야구장ㆍ매화나무 숲·걷기 코스 등이 들어선다. 매향리가 아픔을 딛고 평화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