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못하는 당, 못 말리는 당, 나만 잘난 당’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 부국장 jhyou@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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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결과는 대한민국 주권이 내린 절묘한 신(神)의 한 수였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정치권에 대한 직접 정리에 나선 것이다.

 

식물 국회로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를 종식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전해야 할 20대 총선 과정이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는데 따른 것이다. 가장 먼저 ‘잘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새누리당에게 일여다야(一與多野)의 유리한 선거 구도에서도 과반에도 못 미치는 의석만을 부여하고, 원내 제1당마저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는 뼈아픈 회초리를 들었다.

 

많이 부족해도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믿고 지지하며 기회를 줬는데도 민생 경제는 내팽개친 채 계파 간 공천 싸움을 벌이고, 오만과 독선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배반한 데 대한 대가다.

 

선을 넘은 여당의 오만은 야당 福(여당이 못해도 야당이 더 잘못해 선거에 이긴다)도 소용없고, 무릎 꿇고 흘린 반성의 눈물도 악어의 눈물로 보일 뿐이었다. ‘잘 못하는 여당을 제대로 말리지 못해 더 미운 야당’ 더불어민주당에게는 채찍보다 더 무서운 제1당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겼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격이다. 더민주당에 제1당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은 갈 때까지 가버린 여당에 대한 견제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그동안 잘하지 못했듯이 이번마저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면 내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긴 것이다.

 

1, 2당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국민의당에게는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맡겼다. 제1당인 더민주당보다 높은 당 지지율과 캐스팅보드 역할이 가능한 의석 수를 부여해 1, 2당 모두를 견제하라는 주권의 뜻이다.

 

큰 몸집만이 중요하지 않다는 1, 2당에 대한 주권의 적접적인 경고이기도 하다. 검증도 안 된 국민의당에게 과분한 임무를 부여한 것 역시 주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는 한 번의 기회일 뿐이다.

 

첫 번째 임무 수행 성적에 따라 레이스를 시작하자마자 낭떠러지를 만날 수 있는 일이다. ‘주권은 한 번의 기회는 주지만, 두 번 속지는 않는다.’

정치권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듯싶다.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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