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이세돌-인공지능 알파고 ‘세기의 대국’

바둑 졌지만 인간미는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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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사용된 바둑판을 들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인류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대결이 인공지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승패를 떠나 인간이 바둑을 두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세돌 9단은 3월 8일 알파고와의 대국에 앞서 “좋은 바둑, 재밌는 바둑, 아름다운 바둑을 두겠다”고 말했다.

 

이어 “질 수도 있다”면서도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세돌은 알파고에 뜻밖의 3연패를 당한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값진 1승을 거뒀다. 첨단 기술 앞에서 인간이 무력하게 물러나지 않음을 상징하는 1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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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대국장을 떠나지 않은 채 관계자들과 복기를 하고 있다
상승세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3월 15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의 최종 5국에서 이세돌은 알파고에 280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거대 IT기업 구글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알파고는 한 번 약점을 보였다고 쉽게 무너지는 상대는 아니었다. 

 

이세돌이 처음 마주한 알파고는 생각보다 매우 강력했다. 치밀한 수 읽기와 강한 전투력, 무엇보다 이세돌 9단의 공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기계다운 냉철함이 무기였다. 결국 1국에서 승부수(102수)에 허를 찔려 무너진 이세돌 9단은 당황한 듯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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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승부를 겨루고 있다
2국에서 이세돌 9단은 새로운 작전을 펼쳤다. ‘돌부처’ 이창호 9단을 연상케 하는 안정적인 바둑을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알파고가 승리했다. 

 

3국에서 이세돌 9단은 저돌적인 ‘이세돌 표’ 바둑을 선보였다. 거침없는 흔들기로 알파고를 ‘장고’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알파고는 유연하게 이세돌 9단의 공격을 피하면서 철벽을 쳤다.

 

이세돌 9단이 3연패를 당하자 어느새 대국 양상은 ‘알파고의 도전’이 아닌 ‘이세돌의 도전’으로 바뀌었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은 급하지 않게 복잡한 판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공격 시점을 기다렸다는 듯이 알파고의 중앙 허점을 노린 ‘신의 한 수’(78수)를 끼워넣어 경이로운 첫 승을 거뒀다. 

 

이세돌 9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5국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집바둑 대결을 하며 컴퓨터와 계산력으로 맞대결하는 새로운 도전도 했다. 

 

 불굴의 투지로 이미 인간의 자긍심을 높여준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바둑계에 던진 충격도 두려움이 아닌 흥미로움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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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9단이 5번기 제1국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중계방송을 다중노출로 촬영

글 = 홍완식기자 사진 = 오승현기자ㆍ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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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로기사 이세돌

“5국에서 돌 거둘 때 너무 아쉬워 울컥”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벌인 ‘세기의 대국’ 마지막 5국에서 분명히 유리한 형세를 만들어나갔지만, 결국 마지막에 스스로 돌을 거둬야 했다.

 

3월 15일 열린 5국은 충분히 해볼 만 한 승부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너무 아쉬웠다”고 말한다. 이세돌 9단이 생각해도 그렇다.

 

이세돌 9단은 다음날 김포국제공항에서 “어제 아쉬운 마음으로 밤을 보냈다. 이기고 싶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라고 돌아봤다. 전날 이세돌 9단이 스스로 불계패를 선언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 프로기사들이 ‘울컥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그는 “내가 울컥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아쉬움을 잠시 뒤로 하고 가족과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그는 이날 아내 김현진 씨, 딸 혜림 양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밤을 새워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딸이 손을 잡으면 밝게 웃는 ‘가장’ 이세돌이었다. 어느새 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세돌 9단은 밝은 표정으로 팬들이 요청하는 사인·사진을 모두 응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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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국을 치른 이세돌 9단이 딸 혜림 양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해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다
팬들은 그에게 “애썼어요”, “바둑의 최강”이라며 응원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5차례 맞붙으면서 “일단 초반에 붙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지금의 알파고는 충분히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상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대국으로 심리적인 부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세돌 9단은 “실력은 어쩔 수 없지만, 심리적인 부분에서 부족했다”며 “5국을 돌아보면 분명히 ‘이렇게 두면 좋겠다’는 느낌이 있는데도,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자꾸 다르게 뒀다. 바둑을 떠나 수에 대한 인간적인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것이라는 평에 대해서는 “내 한계는 나왔지만 인간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며 “알파고가 점점 발전하면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글 = 홍완식기자 사진 = 오승현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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