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 안에는 한국전쟁과 동시에 멈춰 서버린 금강산 가는 철길도, 버려진 경원선 열차도 녹슬고 부식된 몸체로 누워있다. 주인을 잃어버린 무기도 철모도 나뒹군다. 이제 그 무기와 철모들이 허허로운 여운을 남긴 채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비무장지대엔 또 하나의 역사가 잠들어있다. 궁예가 건설한 태봉 궁예도성이다. 일제 강점기때 펴낸 책에는 궁예궁터 앞의 석등 사진이 실려있으나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짐작해볼 도리가 없다. 도성과 유물은 남북의 어떤 책에도 실리지 않은 채 분단으로 긴 세월 잊혀져 왔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궁예와 철원과 태봉, 그리고 DMZ안 베일에 싸여있는 궁예궁터에 주목한다. 남북 공동조사를 통해 궁예도성의 실체를 파악하고 역사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4년 9월 13일자 경기일보에 썼던 글이다. ‘한반도의 보고 한탄강’ 시리즈를 연재하며 24번째로 ‘DMZ의 궁예도성’을 실었다. 북한에서 발원해 DMZ을 지나 철원을 흐르는 한탄강 취재를 위해 당시 철원을 자주 찾았다. 자연스럽게 궁예를 만났다. 궁예는 한탄강을 끼고 발달한 옥토가 대평원을 이루는 철원에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궁예도성이다.
궁예도성은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의 옛문헌과 일제가 펴낸 ‘조선보물고적 조사자료’ 등에 나와있다. 1918년 일제가 작성한 지도와 1951년 찍은 항공사진, 1991년 군이 제작한 지도를 토대로 보면, 궁예도성은 군사분계선을 거의 정확히 반으로 나눠 반쪽은 북한, 반쪽은 남한 땅에 위치해 있다. 도성은 남북으로 갈린 것도 서러운데 경원선 철로가 동서로 또 잘라 놓았다.
궁예도성의 규모는 외곽성이 12.5km, 내곽성이 7.7km에 달한다. 한성백제의 풍납토성(전체둘레 3.5km), 신라의 경주월성(1.8km), 고구려의 국내성(2.7km)은 비교도 안될 정도다. 궁예가 ‘영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세계’ 대동방국(大東方國)을 건설하려던 프로젝트가 얼마나 야심찼는가 짐작할 수 있다.
궁예도성의 남북 공동 발굴조사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개성 만월대에 이어 공동조사가 이뤄질 경우 전쟁과 분단ㆍ냉전의 유산이 화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바뀔 수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과 역사 정체성을 찾는 중요한 작업이기에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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