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YS 어록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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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월간지의 취재 요청을 수락했다. 기자가 물었다. “박정희 정권 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었죠?” YS는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가 어디서 이런 착상을 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YS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지금 생각해도 참 괜찮은 말인 거 같아. 그때 내가 생각해 봤지. 돼지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개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좀 이상하지? 또, 소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다 내가 비틀 수 없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비틀 수 있는 게 뭔가 곰곰이 생각해봤지. 그런데 딱 닭이 떠오른 거 아이가”

 

현직 대통령을 소재로 한 유머집 ‘YS는 못말려’의 한 대목이다. YS의 문민정부는 최고 통치자도 공개적인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시대였다. 당시 세간엔 ‘학실히(확실히)’ ‘씰데(쓸데)없는 소리’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 같은 말이 유행했다.

 

YS는 특유의 발음과 말실수로 국민들에게 웃음을 줬지만 오래 기억될 어록을 많이 남겼다. 굴곡진 현대사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결정적 한마디’를 했다. 직설적이고 함축적이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다. YS는 서슬퍼런 유신정권에 계속 쓴소리를 했고, 1979년 10월 4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에서 제명당하며 이 말을 남겼다. YS는 ‘올바른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의 ‘대도무문(大道無門)’도 자주 언급했다.

 

군사정권에서의 ‘저항 어록’도 유명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고 했다. 1983년 민주화 요구 단식투쟁을 하던 YS에게 전두환 정권이 출국을 권유할 땐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고 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변절’이란 비판을 받을 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정면 돌파했다. 1995년 일본 정치인들 망언에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놓겠다”고 했다. 2003년 단식 중인 최병렬 대표를 방문한 자리에선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그의 어록과 그와 관련된 유머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민주화의 주역이자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던 YS는 많은 국민에게 ‘학실히’ 기억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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