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파주, 율곡을 도시브랜드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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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파주가 낳은 대학자이자 왜구침공에 대비해 10만양병설을 주장할 정도로 국제정세에도 정통했던 율곡 이이 선생(1536~1584)과 모친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1504∼1551) 동상이 지난 10일 파주 파평면 율곡리로 귀향했다. 1960년대말 서울 사직단에 처음 세워졌던 것이 46년만에 본향으로 돌아왔다.

 

9번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렸던 율곡 이이와 심사임당 동상은 이날 율곡선생이 배향돼 있는 자운서원을 비롯해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이 영면해 있는 가족묘역, 기념관 등이 있는 파주이이유적(사적 제525호)으로 이전 건립된 것이다.

 

동상2기의 파주귀향은 민ㆍ관 역할이 아주 컸다. 2010년 12월 ‘파주 율곡이이선생·신사임당 동상건립 추진위원회’가 발족돼 전 파주시민이 한마음으로 벌인 동상 귀향 운동이 결실을 맺었다. 율곡이이선생과 신사임당 동상이전과 맞춰 올해 28회인 율곡문화제는 이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파주시민들이 ‘문향(文鄕)’도시라는 자부심을 회복한 행사였다.

 

율곡선생은 호를 본향인 파주율곡리 지명을 땄다. 물론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곳은 강릉 외가다. 하지만 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과 파주 율곡리 본가로 돌아와 신사임당이 돌아가시는 16세까지 적지 않은 시기를 파주에서 보냈다. 임진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 정자인 화석정에는 이이가 8세때 지은 ‘팔세부시(八歲賦詩)’가 선명하게 걸려 있다.

 

동상 2기 이전건립으로 파주=율곡 등식의 마지막 퍼즐을 마친 파주시는 율곡이이유적에 관한 한 전국 어느 지방자치단체와도 견주어도 뒤질 게 없게 됐다. 율곡이이에 관한 지적재산권의 원천기술보유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율곡이이를 도발적으로 파주도시브랜드화(상품화) 해야 한다. 항간에 율곡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으로 고향이 강릉이라고 여겨지는 것부터 교정해 그의 ‘편린’까지 몽땅 상품으로 내놓자는 말이다. 울곡이이를 놓고 경쟁할 강릉시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고향이 강릉임을 내세워 홍길동과 관련된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년 10월 율곡문화제에서는 율곡이이선생을 현대적으로 계승발전해 상징화한 다양한 상품들을 임진각관광안내소와 파주 곳곳에서 만나보기를 기대해 본다.

 

파주=김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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