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를 달려 70년 만의 귀환…홋카이도 강제노동 유골 115위 봉환

▲ 그래픽=70년 만의 귀환, 연합뉴스

70년만의 귀환.

광복 70년만에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이 3천㎞를 달려 귀환한다.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한국 측 대표단은 11일 일제강점기 홋카이도에서 강제 노역하다 숨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다고 밝혔다. 

100위(位)가 넘는 유골이 한꺼번에 봉환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단은 유족 7명과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 측 대표 ㈔평화디딤돌 관계자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됐다. 

이날 홋카이도에 도착하는 대표단은 일본 측 대표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등 일본 시민사회 단체와 합류해 사흘 동안 홋카이도 전역에서 발굴된 조선인 유골을 인수하며 추도식을 연다. 

이 유골들은 지난 1997년부터 18년 동안 한일 양국의 민간 전문가와 종교인, 학생들이 홋카이도 각지에서 수습했다. 

첫 행사가 열리는 홋카이도 최북단 사루후츠(猿拂)촌에선 아사지노(淺茅野) 일본육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 숨진 유골 34위를 인수한다.

아사지노 비행장은 세계제2차대전 말기인 1942∼1944년 조선인 120여명이 강제로 동원돼 이른바 '타코베야'이라는 감금시설에 갇혀 혹한과 구타, 굶주림에 시달린 곳이다. 

대표단은 이어 북부 산간지방인 호로카나이쵸(幌加內町) 슈마리나이(朱鞠內) 우류(雨龍)댐으로 이동해 이곳에 강제로 동원됐다 숨진 조선인 유골 4위도 되찾는다.

우류댐은 지난 1938∼1943년 6년간 건설된 당시 동양 최대 규모(발전용량 500㎾)의 댐으로,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강제로 동원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다.

다음으로는 비바이(美唄)시 토메이(東明)의 절 조코지(常光寺)에 안치된 조선인 유골 6위를 모신다. 

이 유골들의 주인은 지난 1941년 비바이 미츠비시 탄광 갱 내 가스 폭발의 조선인 희생자들이다. 

이어 대표단은 삿포로(札晃)시 소재 혼간지(本願寺) 별원으로 이동, 이곳에 모셔진 조선인 유골 71위를 받는다. 

이 유골은 홋카이도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했던 한 일본인이 따로 보관하다가 지난 1997년 혼간지에 맡긴 것이다. 

대표단은 모두 115위를 되찾은 뒤 배를 타고 해로를 통해 도쿄(東京)까지 간 후 다시 육로로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로 이동한다.

이 경로는 일제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로 홋카이도로 끌려갔던 육로와 해로를 그대로 돌아가는 길로 구성됐다. 

대표단은 각지에서 추도식을 거행하며 이들을 처참하게 희생시킨 '군국주의'를 규탄할 예정이다. 

오는 17일 오후 부관 페리 편으로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하는 유골은 밤새 대한해협을 건너 이튿날인 18일 오전 광복 70년 만에 꿈에 그렸을 고국 땅을 밟게 된다.

부산항에 도착한 유골은 부산 중구 수미르공원으로 옮겨져 진혼노제를 치르고는 서울 중구 성공회성당에 임시 안치된다. 

장례식은 오는 19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장례식이 엄수된다.

이 자리에는 지금까지 유골 발굴에 참여했던 평화디딤돌 관계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일제 피해 관련 시민단체, 유족, 박원순 서울시장 등 1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유골 115위가 20일 서울시가 마련한 파주 서울시립묘지 납골당에 안장되는 것으로 열흘 동안 3천㎞에 이르는 봉환 대장정이 끝이 난다.

평화디딤돌 대표인 한양대 정병호 교수는 "지난 18년간 순수하게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이 드디어 결실을 보았다"며 "이 행사가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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