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아일란 쿠르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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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해안가로 떠밀려온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 난민의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울리고 있다. 아일란 쿠르디는 지난 2일 아침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빨간색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 차림으로 해변의 모래에 얼굴이 파묻힌 모습은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일란의 비극적인 죽음에 전 세계가 슬픔과 충격, 분노에 빠졌다.

아일란의 가족은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 북부 소도시 출신이다. 이들은 IS를 피해 육로로 터키에 도착한 뒤 다시 그리스로 가려고 밀입국 브로커에게 부탁해 소형보트에 몸을 실었다가 배가 뒤집혔다.

깜깜한 바다 한 가운데서 거친 풍랑이 배를 덮치자 아버지 압둘라는 사력을 다해 가족을 보호하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거친 물살에 두 아이와 아내를 놓쳐버렸다. 5살짜리 형 갈립과 엄마의 시신도 아일란이 발견된 해변에서 발견됐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통곡했다. 그의 가족은 올해 초 캐나다 정부에 난민 자격으로 이민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한 바 있다.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된 아일란의 참극에 전 세계 누리꾼들은 SNS에 애도의 그림과 메시지를 올리며 애도하고 있다. 아일란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 펀드에 하루 만에 수천만원이 걷히는가 하면, 난민 수용에 완강한 태도를 보인 영국에선 난민 수용을 늘릴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시민 수십만명이 서명하며, ‘난민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들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를 통해 공유했다.

한 장의 사진이 난민에 대한 각국 정부의 이기주의와 냉정함을 질타하는 동시에 난민의 참담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면서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여론이 들끓자 유럽 각국이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쿼터를 정해 의무적으로 난민을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난민 수용에 미온적이던 영국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아일란의 죽음이 세계인의 도덕과 양심을 다시 한번 깨우는 계기가 됐지만 난민 문제는 아직도 심각하다. 유엔난민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은 누계기준 지난해까지 4천866명이나 된다. 아시아의 인권 선진국을 자부하는 우리의 난민정책도 되돌아봐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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