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허균·잡스도 결국 사람이었다

‘훌륭한 분들’ 찌질한 위인전서 재조명 발자취에 가려졌던 인간적 면모 부각

어린 시절 누구나 ‘롤 모델’이 되는 위인(偉人) 한명은 있었다.

책에는 그 인물의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만이 담겨 있다. 인생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회한은 애초에 부존재하거나 주변적인 것에 머문다. 위대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한자 그대로의 의미를 추적하기 바쁘다.

하지만 위인도 결국 사람이다. 평범했고, 까칠했고, 한편으로 따분한 나날들이 있었다. 우리는 한권의 책으로 완성된 개인의 삶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역시도 애초에는 파편화되고 분열된 서사였다. 인물이 길어 올린 업적과 성취, 성과에 집중하다 정작, 과정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찌질한 위인전> (위즈덤 하우스 刊)은 다르다. 의미 앞에 속어로 쓰이는 ‘찌질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었다. 위인은 맞지만 ‘찌질한’. 의미로 호응할 수 없는 두 단어의 관계 속에는 기존 위인전이 굳이 표현하거나 갈구하지 않았던 위인들의 ‘진짜’ 민낯이 녹아있다.

저자인 <딴지일보> 함현식 기자는 김수영,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등 아홉 명의 동서양, 근현대 위인들의 숨겨진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위인’과 ‘찌질함’을 한데 묶었다.

이 책은 아내를 구타할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속사정, 고흐가 제 발로 정신병원에 찾아 들어간 이유, 허균의 이름이 조선 왕조에서 지워진 배경, 끊임없이 권위를 조롱하면서도 노벨상을 거부하지 못한 파인만의 속내,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좌절과 도취를 반복했던 스티브 잡스의 이면 등 평범하다 못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위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인물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뛰어나고 훌륭했던 발자취에 가려져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함이다.

인물들이 지닌 각자의 상처, 못나고 변변찮은 면면들. 그것들을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삶에서 느끼는 슬픔과 불안, 절망과 우울이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다. 이를 동기로 삶에서 유발되는 걱정과 고민, 근심의 근원을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값 1만4천800원.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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