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한완상 칼럼] 과연 일본이 한국보다 더 민주국가인가
오피니언 한완상 칼럼

[한완상 칼럼] 과연 일본이 한국보다 더 민주국가인가

얼마 전 아베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로 화가 났는지 뜬금없이 한국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같은 투정섞인 오만한 발언에서 나는 일본이 과연 우리보다 더 민주적 국가인지를 되묻고 싶었다. 그리고 과연 일본은 문화선진국인지를 묻고 싶다.

1945년 이전 일본은 한 마디로 유일한 황색제국주의 국가였다. 청일전쟁 승리로 대만을 식민지로 삼켰다. 10년 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한반도를 꿀꺽 삼키려했다.(1905년 을사늑약) 이때 미국과의 밀약으로 마침내 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로 병합했다.

그후 36년간 우리 민족은 총체적 고통을 부당하게 겪어야 했다. 우리말, 우리 성, 우리 신앙, 우리 역사 모두를 탈취당하는 수모와 아픔을 겪었다. 그렇다면 패전 후 일본은 스스로 민주국가로 우뚝섰던가?

무섭게 팽창하는 소련을 견제했던 미국의 핵안보우산 아래 일본은 미국의 일방적 시혜조치로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의 겉옷을 입게 되었다. 미국의 옷이라 다소 헐렁했다.

그런데 화려한 이 겉옷 속의 몸통에는 한반도 병합과 만주괴뢰국 수립을 도모했던 이른바 귀태들의 피가 진하게 흘렀다. 또 흐르고 있다. 일급 전범자였던 기시노브스케의 손자인 현 총리가 매카더 체제의 평화 헌법을 뜯어고쳐, 지금 무섭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할 군사대국으로 굴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여기는 우리는 다시 한 번 일본정부의 타성적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기에 일본이 억울한 원폭피해국임을 만방에 알리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부당하게 끼친 반인륜적 범죄의 아픔은 끈질기게 외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는 독일의 나치와 다르기에 마땅히 다른 잣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우긴다. 황색제국주의나 백색제국주의가 모두 제3세계의 민중에 끼친 침략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를 수 없다.

또 다른 한편 무섭게 굴기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베 정부는 미국과 공조하는 일에 자존심 없이 순종적이다. 그래서 재빨리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가입했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는 짐짓 거리를 두면서 미국의 기분을 맞추어주고 있다.

그래서 올해 늦봄에 아베 총리는 미합동의회에서 연설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일본이 결단코 한국보다 더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밑으로부터 끈기있게 분출하는 민주시민의 뜨거운 열망으로 이뤄진 토착적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했다. 이승만 문민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가 비록 그것이 부족하고 미완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런 민주주의를 일본은 아직 쟁취하지 못했다.

더구나 4·19 혁명, 6·3 민족주의 항쟁, 긴급조치하의 끈질긴 민주화투쟁, 이른바 87시민혁명(불완전 체제이긴 하나) 그리고 광주민주시민투쟁 등을 거쳐 이룩한 값진 우리의 민주주의를 일본은 아직도 체험 못하고 있다.

지난날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안팎으로 싸워서 오늘의 일본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이 아니다. 패전의 ‘선물’로 주어진 것일 뿐이다.

패전 후 오늘까지 일본은 미국의 핵안보우산 안에서 편하게 반공 우익의 일당 독재체제를 누리고 있다. 비록 지금의 일본 집권당이 전체주의 독재정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국보수당이나 미국공화당보다 훨씬 더 평화지향적 민주정당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에 견주어 한국정치현실에서는 그간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노동운동의 희생적 투쟁으로 오늘의 민주체제를 값비싸게 성취했다.

비록 아직 갈 길은 멀고, 우리도 지난 7년간 역사 후퇴를 아프게 겪고 있으나 우리의 부족한 민주주의가 결코 오늘의 일본의 우익수구일당지배하의 민주주의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베 정부의 주장에 일리가 있긴 하다.

밑으로부터의 시민혁명에 의한 민주주의 기본가치를 일본과 한국이 공유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역지사지하고, 역지감지하면서 보다 자랑스러운 아시아의 민주국가로 우뚝 솟아야 한다. 이제 동북아시아는 동쪽 끝 극동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축이 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