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더이상 총기 안전국 아니다
지난 2월 27일 화성에서 총기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세종시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3명이 숨진지 이틀 만이다.
이날 오전 9시께 화성시 남양동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J씨(75)가 큰형(86)과 큰형수(84·여)를 엽총으로 쏴 살해 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출동한 이강석 경정(당시 화성서부경찰서 남양파출소장)도 순직했다.
사건 발생 당시 J씨의 조카는 집에 없었으며, 며느리는 2층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입었다. 4형제 중 셋째인 J씨는 평소 큰형에게 술에 마시고 찾아와 돈을 달라며 행패를 부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전 9시34분께 며느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강석 경정과 L순경은 4분 뒤 현장에 도착했고, 이 경정은 L순경의 테이저건을 든 채 J씨를 설득하려다 J씨가 쏜 총에 오른쪽 어깨를 맞고 숨졌다. J씨도 오른쪽 겨드랑이와 가슴에 각각 한 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충격에 빠진 유가족과 주민 “믿기지 않는다”
화성 총기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유가족과 주민들은 충격과 실의에 빠졌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사건 현장에는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폴리스라인 뒤로 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사건 현장 한켠에서는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엽총에 맞아 사망한 J씨와 아내 P씨는 이 지역에 오랫동안 살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통했다.
인근 빌라에 살고 있는 K씨(64)는 “변을 당한 P씨가 성당에 열심히 다녔으며, 아들(58)이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사를 하면 항상 선한 웃음으로 반겨주던 노부부의 모습이 선한데 사고를 당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노부부는 다음달 손자(30)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J씨의 처남 P씨(80)는 “다음달에 손자가 결혼한다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면서 “경사스런 일을 앞두고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오열했다.
이강석 경정 영결식
“강석아. 제발 대답 좀 해봐…”
화성 총기사건 현장에 출동했다 허망하게 순직한 고 이강석 경정의 영결식이 치러진 3월1일 화성서부서는 유가족 및 동료의 오열과 통곡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더욱이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소외된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이 시대 참 경찰관을 잃은 상실감에 경찰 내부는 물론 국민들이 함께 안타까워 했다.
이날 영결식은 경기지방경찰청장(裝)으로 치러졌으며, 대형 스크린에서 이 경정의 사진이 상영되자 350여명의 동료 경찰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전날 경정으로 1계급 특진된 고인의 영정 옆에는 제복과 경찰 공로장, 녹조근정 훈장 등이 함께 놓여 있었다. 이를 본 유가족들이 주저앉아 오열해 참석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 경정의 아내는 영결식 내내 “어떻게 해…어떻게 해”라며 눈물을 흘렸고,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또 이 경정의 형과 누나는 고인의 제복과 구두를 품에 안고 “신발 신고 집에 가자”면서 한참을 흐느꼈다. 한편 영결식 후 유해는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현충원에 안치됐다.
도내 허가받은 총기 2만6천여정…관리 구멍 ‘흉기 돌변’
화성시에서 사냥용 엽총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당국의 총기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경찰의 소지허가를 받은 총기는 모두 16만3천664정으로 이 가운데 엽총은 3만7천424정에 달했다.
경기도에서만 2만6천696정(엽총 7천81정·공기총 1만5천753정 등)이 소지허가를 받았고, 수렵면허증과 포획승인증을 제출하면 수렵기간(11~2월) 중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총기를 출고할 수 있다.
이들 총기는 멧돼지도 한 방에 쓰러트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지만 총기관리는 허술한 실정이다. 사건의 피의자 J씨는 폭행, 사기 등 전과 6범이지만 금고 이상형을 선고받지 않아 총포 소지허가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또 수렵기간 중에는 전국 어느 파출소에서나 총기 입·출고가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사냥터가 없는 화성지역에서 유해조수 구제(사냥) 허가도 받지 않은 J씨가 총기를 마음대로 꺼낼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J씨는 총기를 입·출고하면서 ‘오늘도 허탕이다’며 마치 사냥을 한 것처럼 경찰에 이야기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청은 사건 이후 총기 소지 결격사유에 폭력성향 범죄경력자 추가, 총기 입출고 경찰관서를 주소와 수렵장 관할 경찰관서로 제한, 입출고 시간 단축, 소지 허가 갱신기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 등의 수렵총기 관리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사후 약방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글=송우일기자 사진=김시범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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