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같은 삶’ 나만 아니기를… 현대인의 비정한 초상

소설가 구병모 두번째 단편집 다양한 비극·고통·공포 담아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著 / 문학과지성사 刊

“당신, 몸은 여기 살면서 정작 버릴 수 있는 거 이 중 한 가지도 없는 주제에, 그 빚 갚음 하느라고 혼자 깨어 있는 척 치열한 척 하지마.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으니까.” <이창> (裏窓) 중에서.

지난해 우리의 일상은 문자 그대로 ‘재난’ 같았다. 실제 그렇기도 했다. 수많은 타인의 고통과 마주하며, 잠시 슬퍼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언제나 똑같은 ‘패턴’ 뿐이다. 비극도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TV나 신문, 인터넷상에 도배되는 ‘끔직하고’ ‘자극적인’ 사건사고에도 무감각해졌다. 이제 웬만한 것은 ‘한계효용’이 없다. 그저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빌며 끊임없이 ‘타자화’ 한다.

구병모 작가가 신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문학과지성사 刊)을 발표했다. 지난 2011년 <고의는 아니지만> (자음과모음 刊)에 이은 두 번째 단편집이다. 테마는 ‘재난’이다.

죽고, 죽이는, 상황이 아닌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촉발되는 다양한 유형의 비극과 고통, 공포를 8편의 단편 속에 담았다.

이야기는 다양하다. 친구의 부고를 듣거나(여기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지독한 가난 속에 홀로 아이를 키운다거나(관통), 아동학대를 우연히 목격하는(이창) 등 누구나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일부터 모든 걸 녹이는 산성비(식우),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등의 비현실적 상황도 그렸다.

‘재난’ 자체를 그리고 있지만 ‘재난’에 집중하지 않는다. 외면하는 인간과 방임하는 사회, 그 본질을 간직하면서도 ‘도덕’과 ‘윤리’, ‘도의’로 포장된 기만과 위선의 인간군상(群像)을 나열할 뿐이다.

때문에 작품 속 묵시룩적 배경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졸렬함을 증폭시켜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는 결국, 묵시룩적 설정이 두드러지는 ‘식우’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에 이르러 폭발한다.

작가는 책 속에서 그것의 부당성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있는 지금의 우리 모습 그대로를 표현할 뿐이다. 우리 내면에 감춰진 치부를 건드려 터뜨려버리는 견고한 문장을 읽는 느낌이, 묘한 쾌감을 준다. 값 1만2천원.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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