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원미1동 김서영 의원 원장
“결혼이요? 결혼을 하면 가족에게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헌신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봉사와 결혼했습니다.”
부천시 원미구 원미1동 원미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김서영(55) 의원. 이곳을 찾는 환자를 부르는 김 원장의 호칭은 참 별스럽다.
스물다섯 아래는 아들, 딸, 연배가 비슷한 사람은 자기, 어르신들은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분명 병원이지만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다. 김 원장의 꿈은 원래 목사의 사모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수녀가 되는 것이었지만 수녀가 된다고 해도 봉사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 장신대 신학과를 졸업한 후 김 원장은 현재 서울 은평뉴타운지구가 들어선 곳에서 3년여 동안 무료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넉넉한 집안의 도움을 받아 직접 벽돌을 쌓고 보육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무허가 건물에서 무료로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를 하다 지난 1990년 미국행을 선택했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미국행이었지만 의료공부를 시작, 의사가 됐다.
“음성 꽃동네 초창기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웅진 신부님이 봉사자들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의사와 간호사라는 말을 하셨어요. 의사가 된 것도 봉사를 하기 위해 선택한 겁니다.”
김 원장의 주 전공은 피부과. 하지만 통증과 한의학 면허도 갖고 있다. 김 원장은 의료선교를 떠나게 되면 각 과별로 의사가 필요한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곤란해 다른 과목도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선교 자체가 오지를 찾아가기 때문에 약이 떨어지거나 기구가 부족할 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와 침으로 환자를 돌볼 수 있어 한의학을 배우게 됐다고.
김 원장은 미국에서 의학 학위를 받고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주로 남미에서 10여 년 동안 의료선교 봉사활동을 했다.
자부담으로 의료봉사를 해 오던 김 원장이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자리에서 개원을 한 것은 지난 2009년 2월. 이곳은 장애인, 이재민, 북한이탈주민 등 의료보호 1종 대상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김 원장은 돈이 없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준다. 김 원장에게 환자는 돈이 아니라 돌봐야 할 가족이다.
김 원장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무의탁 노인이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을 돌아가실 때까지 돌볼 수 있는 요양센터를 짓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요양센터가 아니기 때문에 빚을 내서 시작을 할 수 없는 이유다.
김 원장은 “작은 규모로 요양센터를 만드는 것이 꿈인데 얼마남지 않았다”며 “10년 안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며 환하게 웃었다.
부천=윤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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