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태극기 달기 운동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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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의 관객이 1천40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는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이 시대 아버지의 삶을 ‘덕수’의 인생을 통해 생생하게 그렸다. 영화 속엔 주인공 남녀가 말다툼을 하다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자 벌떡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를 두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회의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까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말이 계기가 된 것일까. 정부가 대대적으로 ‘전 국민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운동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토록 했다. 3ㆍ1절을 통해 분위기를 확산시켜 올해 70주년을 맞는 광복절에는 태극기 게양률이 최대치가 되도록 해 애국심을 고양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행정자치부는 민간건물과 아파트 동마다 별도의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민간 건물의 국기 게양대 설치 의무는 1999년 5월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됐는데 부활하게 됐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게양한 뒤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고 일기와 소감문 등을 발표하도록 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유치원생에게도 국기 교육을 시키고, 각 교실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지 등도 점검한다. 국기 게양ㆍ하강식 실시도 계획돼 있어 1989년 1월 이후 사실상 사라진 국기 게양ㆍ하강식이 재현될 수도 있다.

폐지된 지 오래된 국기 게양ㆍ하강식 부활과 국기 게양 소감문 및 인증샷 제출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 인터넷엔 벌써 ‘점차 유신으로 돌아가는거냐?’ ‘태극기 강제 게양한다고 애국심이 생길 거라는 발상 자체가 독재스럽다’는 등의 댓글로 시끄럽다.

국경일 국기 게양 비율이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하락했다. 국민들의 태극기 사랑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애국심은 정부의 강요가 아닌, 국민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삶은 팍팍하고 미래 희망은 보이지 않은데,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득한데 태극기 달기를 강요한다고 과연 애국심이 생길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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